
5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민들의 건강과 의료비에 대한 고민은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의 1440년 7월 28일(세종 90권, 세종 22년)의 기록을 보면 570년전의 조선 초기 의료계 실상을 소상히 알 수 있다.
"혜민국에서 팔고 있는 약은 값이 너무 비싼 까닭에, 크든 작든 병든 가정에서 쉽게 구입해 병을 치료하지 못하니, 지금부터는 가장 귀한 청심원·소합원·보명단 외의 나머지 약은 값을 다시 정해 내리도록 하소서."(又惠民局所賣藥價過重, 故大小病家未易市買救活, 今後 最貴淸心元蘇合元保命丹外, 其餘藥價, 更加磨勘, 酌量差減.從之)
당시 최고행정기관인 의정부에서 평민을 치료하던 혜민국의 약값이 비싸니 약값을 내려야 한다고 세종에게 올린 건의문이다. 청심원이나 소합원 등은 지금으로 치면 보험이 되지 않은 고가의 비급여 항목 약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그로부터 32년 후인 성종 3년 때인 1472년 10월 18일 실록에는 약가의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내리라는 성종의 어명이 하달됐다.
실록에 따르면 성종은 "전의감·혜민서의 약값이 너무 비싸서 병을 구원하는 자가 사서 쓰기가 어려우니 다시 싸고 비싼 것을 참작해서 그 값을 잘 정해 백성에게 편리하게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傳曰: 典醫監、惠民署藥價過重, 救病者難於買用, 更酌輕重, 詳定其價, 以便於民. 조선왕조실록 성종 23권)
전의감은 양반을 치료하던 곳으로, 평민을 치료하던 혜민서, 약재를 맡아보던 제생원과 함께 조선시대에는 삼의사(三醫司)로 불리던 의료기관이다. 성종의 어명은 오늘날로 보면 최근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약가 재평가 작업 정도로 보인다.
당시에도 의료비 문제로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자, 임금이 나서서 올바른 약가의 책정과, 약가 인하를 통한 국민의 부담을 줄이라는 어명을 내린 듯하다.
하지만 50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모양이다. 보건의료미래위원회는 지난 9일 흥미로운 자료를 내놨다. 2009년 국민의료비 현황과 2020년 국민의료비 가추계 결과가 그것이다.
요지는 아무런 정책대안 없이 지금대로 간다면 국민의료비는 2020년 256조원 규모로, 2009년 대비 정부 지원액, 건강보험료는 물론 개인부담액도 3배씩 오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같은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조치가 불법리베이트 단속과 '지불구조의 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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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정부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검경이 나서 의사와 제약사 모두에 대해 불법리베이트를 단속하고 저가구매인센티브 제도로 약가 인하를 도모하고 있다.
여기에 특정 질병에 가격을 매기는 '포괄수가제'나 한해 예산을 한 번에 지급하는 '총액계약제' 도입을 통해 의료비를 줄이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복제약 약가 인하 방안이나, 처방전 하나로 여러 번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처방전 리필제'도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인 의사나 약사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진료에 상응하는 제대로 된 가격이 매겨져야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이해당사자간 논의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시점에서 문종이 병으로 승하하고 단종이 즉위한 그해 삼의사를 관장했던 경창부윤 이선제의 상서는 5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부나 의료계 양쪽 모두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선제는 문종의 승하가 부실한 의료체계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1452년 12월25일 당시 의료계의 현실을 질타하고, 정부의 의료인에 대한 지원정책을 단종에게 다음과 같이 상소했다.
"의원된 자가 고금의 의서에 통하고, 인의를 지키며, 외부로 쏠리는 마음을 끊고, (인명을) 구하고 치료하는데 데만 전념하면 문제가 없다"며 "지금 의원의 무리들이 모두 이름을 팔고 이익을 구하기에 힘써서 '황제소문'(중국 최고의 의서)을 탐구하지 않고 약재의 품성을 연구하지도 않는다"고 질책했다. 의원들에 대한 질책에 이어 의료개혁에 대한 대책도 제안했다.
그는 유능한 의원들을 '제거'(정삼품, 종삼품: 현재의 장차관), '별좌'(정오품, 종오품: 현재의 행정부 국실장급)의 직책을 주고 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데 힘쓰면 몇 년 후 양의(良醫)가 나와 질병에 대한 백성의 걱정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당시 정삼품은 전지 85결(1결당 토지 3000평 규모, 연간 쌀 240말 생산), 시지 40결을, 정오품은 전지 60결, 시지 21결을 받는 고위직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장차관급이나 최소한 국실장급으로 대우해 제대로 된 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의원은 백성을 치료하는데 전념하고, 나라는 의원이 다른 걱정 없이 백성을 치료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라는 500년전 조상들의 지혜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