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당번약국 5부제 '취소' 아닌 '유보'로 여론 살펴

지난 16일 김구 대한약사회 회장이 정부의 일부 일반약의 약국외 전환에 반대하는 의미로 삭발식을 가졌다.
삭발식은 특정 단체의 수장들이 강력한 반대의 뜻을 표명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자신들의 뜻을 대·내외에 알리려는 의도로 이뤄지는 만큼 주요한 이슈의 경우 언론을 통해 이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구 회장의 이번 삭발식은 비공개로 진행된 약사회 상임이사회의에서 이뤄졌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이를 취재하려했지만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약사회 관계자는 "일반약의 약국외 전환과 관련해 김구 회장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삭발을 결정했다"면서도 "다만 삭발을 하는 모습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일 것을 우려해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김구 회장의 삭발이 왜곡돼 전달되고 이번 이슈의 본질을 흐릴 것을 우려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열린 '의약품 약국외 판매 저지를 위한 대한약사회 전국 임원·분회장 긴급 결의대회'에서 김구 대한약사회장과 약사들은 '단결'이라는 혈서를 쓴 바 있다. 약사회 회원들은 김구 회장의 행동에 공감했지만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약사회는 삭발식을 두고 약사와 국민의 여론 사이에서 적잖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 회장은 약사들의 단체인 약사회의 수장으로서 약사들의 이익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일반약 약국외 전환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지를 표명해야 하는 만큼 삭발이나 단식 등을 통해 회원들의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면에서는 삭발식이 약사단체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극단적인 행동으로 비춰져 여론이 불리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구 회장은 삭발식 이후 "복지부의 일방적인 의약외품 전환 발표에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수장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통감한다"고 밝히고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이 추진된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이를 막아 내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와 여론몰이를 통한 압박 속에서 정부는 의약품의 안전성이라는 소신을 버렸다"며 여론의 압박을 의식한 듯한 발언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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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회원과 여론을 사이에 둔 약사회의 줄타기는 이뿐이 아니다.
약사회는 16일 열린 상임위원회에서 "정부가 신뢰를 져버렸다"며 오는 2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당번약국 5부제를 유보하겠다고 나섰다.
국민들이 약국에서 상비약을 구하는데 불편을 느낀다는 이유로 약국 외 판매가 추진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약사회가 내놓은 것이 '당번약국'제도다.
약사회는 의약외품 전환 여부와 중앙약심 결과, 정부 입법 움직임 등 추이를 봐가면서 당번약국 5부제 시행 시점을 결정하기로 했다. '일반약 약국외 판매는 저지하지 못하고 당번약국제로 약사들만 고생하게 됐다'는 약사들의 정서를 감안한 것이다.
다만 약사회가 당번약국 5부제 시행에 대해 '취소'가 아닌 '유보' 결정을 내린 것은 여론의 흐름에 따라 약사회의 입장을 정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약사회가 일방적으로 당번약국 5부제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겠다던 약사회의 진정성이 훼손돼 여론이 불리하게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