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끝서 즐기는 '오감만족'

남끝서 즐기는 '오감만족'

장태동 여행작가
2012.05.05 10:41

[머니위크]장태동의 여행일기/정남진 토요시장·상선약수마을

목청은 높아도 악은 없으니 장터가 그래서 더 정겨운 것. 정남진 토요시장에 이어 상선약수마을이 여행자를 반긴다. 물 흐르듯 막힘없는 발걸음은 대숲에서 솔숲으로 그리고 편백나무 숲을 지나 다시 마을로 이어진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이치를 닮은 하루가 상선약수마을에서 선하게 지고 있다.

봄의 골짜기에 초록이 깊어진다. ‘화르락’ 피어난 개나리, 목련, 벚꽃이 진 자리를 이름 모를 들꽃과 철쭉이 채운다. 먼 남쪽, 전남 장흥 산과 들판에는 완숙한 봄이 벌써부터 자리 잡았다. 오늘 하루 남녘 꽃길, 숲길에 발걸음이 순하다.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바다

전남 장흥은 전남 교통의 중심지인 광주에서도 1시간 이상 가야하는 먼 거리다. 서울에서 5시간 거리니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해도 도착하면 바로 점심시간이다. 장흥을 돌아보기 전에 장흥 특산물 먹을거리인 ‘매생이탕’을 먹는다.

이번 여행의 출발점은 장흥시외버스터미널이다(자가용 이용자는 ‘정남진 토요시장’으로 곧바로 찾아가면 된다. 장터 옆 탐진강 둔치에 주차공간이 있다). 버스터미널에 내려 약 800m 정도 떨어진 ‘정남진 토요시장’을 찾아 간다.

매 2일과 7일, 토요일에 장이 선다.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장터 공연장에서 공연도 한다. 농수산물과 해산물이 장거리에 즐비하고 원색의 화려한 공산품들이 땅바닥에 허공에 매달렸다.

장흥정에 목청 높인 시골사람들 모습이 정겹다. 장구경 사람구경하며 장터 막다른 길까지 왔다. 높고 파란 지붕 아래 무대 스피커에서 연신 음악이 흘러나온다. 옛날 교련복을 입은 아저씨가 사회를 보고 빨간 립스틱에 주근깨를 잔뜩 그려 넣은, 원본과는 색다른 ‘어우동 처녀’가 장터 흥을 돋운다.

들썩이는 어깨를 추스르고 공연장 부근에 있는 매생이탕 파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장흥 장터음식 중 가장 토속적인 게 매생이탕이다. 주인아줌마 말에 따르면 매생이는 겨울에 먹는 음식인데 지난 겨울에 따서 냉동시킨 게 남아 있다고 한다.

장흥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매년 11월쯤 바다에 매생이가 자랄 수 있는 시설물을 설치한다. 그리고 12월부터 매생이를 딴다. 겨울 바다 찬 기운을 머금고서야 매생이는 제 맛을 낸다.

주인아줌마는 “매생이탕은 꼭 뚝배기에 끓여야 제맛”이란다. 갓 끓여 나온 매생이탕이었지만 보글거리지 않으면서 김만 피어난다. 그 뜨거운 열기를 매생이 자체가 다 끌어안고 있었다.

호호 불어가며 한숟가락 떠 입으로 가져가는 데 뜨거운 맛에 혀가 놀랐다. 어느 정도 열기가 가신 뒤 입에 넣는 데 혀에 감기는 촉감이 너무 부드러웠다.

몇숟가락 뜨고 난 뒤 그 맛을 조심스럽게 음미했다. 김의 세련된 맛도 아니고 미역의 진한 맛도 아니었다. 구수한 맛의 깊이가 바다와 같았다. 거기에 바지락, 굴, 날가지 등 해산물이 들어가는 데 먹을수록 진해지는 그 맛은 아마도 뚝배기에서 함께 들끓어 하나의 맛을 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바람 겨울바다를 이겨내고 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뚝배기 매생이탕을 먹는 일은 혹독한 세월을 이겨낸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일이다.

겨울에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아줌마 말처럼 벌써 겨울이 기다려진다. 뼈를 얼리는 추위라야 그 뜨거운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매생이탕. 지금 내 목구멍으로 한숟가락의 바다가 넘어 간다.

◆삼색 숲길을 거닐다

장터를 벗어나 장흥대교 아래 돌다리를 건너 군민회관5거리에 도착했다. 5거리 한 쪽에 서 있는 ‘상선약수마을’ 이정표 돌비석이 가리키는 대로 길을 따랐다.

직선 아스팔트길 1.5km를 걸어야 한다. 길 양쪽 옆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훈훈한 열기를 머금은 바람에 들판의 향기가 가득하다. 들판에 작은 꽃들이 가득하다. 마을 입구 메타세쿼이아길이 여행자를 반긴다.

메타세쿼이아길이 끝나는 곳에 정자가 있다. 상선약수마을 입구다. 정자 옆에서 대나무숲길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나무계단길이다. 대나무가 하늘을 가려 햇볕이 걸러든다. 길은 험하지 않지만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이마에 땀이 맺힐 때 쯤 대나무숲 오르막이 끝난다. 땀 식혔다 가라고 누군가 놓은 평상이 편안해 보인다. 평상을 지나면 소나무숲이 나온다. 소나무숲길 끝은 억불산 임도와 이어진다. 정자에서 여기까지가 약 700m 거리다. 임도는 시멘트길이다. 임도 따라 1.1km를 더 걸으면 ‘정남진 천문과학관’이 나온다.

정남진 천문과학관

천문과학관 앞에 서면 장흥 읍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300m가 채 안 되는 높이인데도 시야가 좋다. 음수대가 있어 목도 축이고 식수도 보충할 수 있다. 거기서 약 1km 더 올라가면 억불산 정상이다. 등산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천문과학관 앞으로 난 숲길로 내려갔다.

예양교에서 바라본 풍경과 편백나무숲길(위부터)

그 길에서 편백나무숲을 만났다. 쭉쭉 뻗은 가지에 하늘을 가린 편백나무숲은 여행자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숲을 아주 천천히 거닐었다. 곳곳에 놓인 운동기구에도 매달려 보고 평상에 눕기도 했다. 주변에 사람만 없었다면 옷을 다 벗고 풍욕을 즐기고 싶었다.

◆울긋불긋 꽃대궐 마을길을 걷다

편백나무숲을 벗어나서 걷다보니 억불약수터가 나왔다. 목을 축이고 약수터 앞에 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그 길은 마을로 이어졌다.

마을 위쪽에 작은 절집 ‘성불사’가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일주문도 없는 절 입구 나무그늘 아래 ‘소원성취’라는 글을 쓴 기와 한장이 문패처럼 놓였다.

절집을 지나자 숲속 마을 외딴집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소소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인생을 즐기는 장소였다.

마을에 있는 우물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오래된 우물이 나왔다. 조선시대부터 대나무통에 숯과 모래, 자갈 등을 넣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걸러 먹었다. 그때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물을 지나 걷는데 온통 꽃으로 뒤덮인 지붕 낮은 집이 보였다. 마당과 집 주변이 화사한 꽃들로 가득 찼다. 그야말로 ‘꽃대궐’이었다.

마을 연못 주변에 있는 배롱나무

그 집 앞에는 50여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는데 여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아직은 앙상한 가지만 구불거리며 하늘을 이고 있었다. 연못 안 작은 땅에는 큰 소나무 4그루가 친구처럼 서 있었다. 연못 옆으로 난 음습한 골목길에는 고택의 담장과 거대한 나무가 하늘을 가렸고 그곳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푸른 이끼가 자랐다.

고택으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 있어 옛집의 정취를 구경할 수 없었으나 담장과 나무, 그 아래 이끼 낀 돌계단만으로도 오래 된 마을의 향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마을길을 따라 나오는 데 해가 지면서 마을 앞 작은 저수지에 노을이 그 빛을 뿌려놓고 있었다.

대숲 소나무숲 편백숲을 지나 마을 안 소박한 꽃대궐까지 물 흐르듯 걸어온 길. ‘상선약수’, 거슬러 흐르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모이는 이치를 품고 있는 물이 도에 가깝다는 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마을의 원래 이름은 평화리. 하지만 그 이름보다 ‘상선약수마을’이라는 별칭이 더 어울린다. 깊은 봄으로 길을 내준 이 마을 자연이 고맙다. 나무와 꽃들이 제 자리에서 제 빛을 내며 여행자를 맞이하는 이런 마을이라면 사람들 또한 ‘물의 이치’를 지키고 사는 선인들은 아닐까.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호남고속도로 - 광주 - 29번국도 화순 장흥방면 - 장흥 - 정남진토요시장 - 군민회관5거리 - 평화리(상선약수마을)

대중교통: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6대 차가 있다. 다른 방법은 일단 전남 광주까지 간 뒤 광주에서 장흥 가는 차를 타는 것이다. 장흥버스터미널에서 정남진토요시장까지 약 800m 정도다. 걸어갈 만하다. 시장 구경 끝내고 약 2.7km 정도 떨어진 상선약수마을까지도 걸어갈 만하다. 토요시장에서 군민회관5거리까지 간 뒤 상선약수마을 이정표를 보고 곧게 뻗은 들판 도로를 걸어가면 된다.

<음식>

장흥에 가면 정남진토요시장을 들러야 한다. 매 2일과 7일, 토요일에 장이 선다. 옛날 시장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다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장터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려 장터의 흥을 더욱 돋운다. 토요시장 공연장 앞 식당에서 파는 매생이탕을 먹어봐야 한다. 매생이는 장흥 특산물 먹을거리로 매년 겨울에만 채취한다. 겨울에 채취한 매생이를 사철 팔기 위해 식당마다 냉동 보관한다. 입안에서 느끼는 질감이 부드럽고 그 맛은 구수하다. 매생이탕은 김이 나지 않지만 매생이가 열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먹을 때 천천히 식혀가며 먹어야 한다.

<숙박>

상선약수마을에 ‘대나무집’ ‘호숫가 집’ 등 민박집이 몇곳 있다.

<상선약수마을 산책 코스>

평화리(상선약수마을) 입구 정자 - 0.7km - 대숲 지나 솔숲 끝나는 지점(임도와 만나는 지점) - 1.1km - 정남진 천문과학관 - 0.1km - 편백숲길 - 0.7km - 마을 위쪽 천문과학관 주차장 - 0.2km - 평화리 상선약수마을

대나무숲길, 소나무숲길, 편백나무 숲길 등 세가지 색의 숲길을 걸을 수 있는 2.8km 산책 코스다. 걷기여행의 시작은 상선약수마을 초입 메타세쿼이아길 끝나는 지점. 마을 입구 정자 옆에 대숲길로 들어선다. 15~20분 정도 계속 올라가면 대숲은 끝나고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짧은 소나무숲길이 끝나면서 억불산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가면 정남진 천문과학관이 나온다. 천문과학관 앞 숲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르면 곧바로 편백나무숲길이 나온다. 숲길에서 벗어나면 억불약수터가 나오고 그 앞 나무로 만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마을이다. 꽃 만발한 마을은 자체가 잘 꾸며 놓은 정원 같다. 마을 입구 저수지에 노을 지는 풍경도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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