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박사 학위받고 딱풀로 영수증 붙이는 연구원

해외박사 학위받고 딱풀로 영수증 붙이는 연구원

유엄식 기자, 정진우 기자, 정혜윤 기자
2016.08.21 19:01

[Sink하는 ThinkTank]지방이전, 감원으로 인력 엑소더스…연구여력 부족한 국책연구소, 거시경제 소홀해진 민간연구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김주훈 경제정보센터소장(60)을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선임했다. 그는 지난 2010년 KDI 부원장을 역임했고 김준경 원장과 서울대 동문이다. 원장급 인사를 수석이코노미스트에 앉힌 것은 전임 조동철 박사(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빈자리를 메울 마땅한 인사를 찾지 못해서다. 경륜을 갖춘 고급인력들이 세종시 근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란 얘기가 나온다.

#지난달 정년 퇴임한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60)은 아직도 출근한다. 우리나라 반도체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산업연구원에 계약직 형태로 1년 더 일하기로 했다. 주 연구위원의 후임이 없어서다. 주 연구위원이 이대로 연구원을 떠나면 반도체 전문가 자리가 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주 연구위원의 후임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세종시에 근무해야 하는 연구원의 현실 때문에 지원자가 없다.

#한 민간연구소에서 근무했던 A연구원은 최근 언론사 이코노미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모기업 경영난이 악화되자 서울에 있던 연구소를 갑자기 지방으로 옮기고 인력도 대폭 줄여서다. 현재 서울에 있는 주요기업 민간연구소들은 산업공학과, 경영 관련 전문가를 제한적으로 영입하고 있어 경제학 박사들의 연구원 재취업은 매우 어렵다.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어온 국내 '싱크탱크'(Think Tank)들이 가라앉고(Sink)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혜안을 담아 미래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들어야 할 연구원이 인재 유출과 인력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 장기과제 연구할 여력 없는 국책연구원=국책연구원은 보통 1년 단위로 연구 과제를 끝낸다. 2~3년간 공들인 결과물을 찾기 쉽지 않다. 수개월만에 끝내는 연구도 많다. 연구원 혼자 한해 30여개 넘는 용역을 동시에 진행할 때도 있다.

정부나 유관기관에서 단순 매뉴얼식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경우도 많다. 인력이 충분치 않다보니 비용계산서 영수증을 챙기고 관련 증빙서류를 만드는 등의 운영지원 업무까지 연구원들이 직접 챙기는 경우도 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연구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 국책연구원 박사는 "동시에 여러개 연구를 진행하고 주어진 시간도 짧다보니 장기적인 안목에서 연구를 지속할 수 없다"며 "연구 외적인 측면으로도 신경쓸 게 많아 전문성 있는 결과물을 내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국책연구단지를 세종시로 옮긴 것도 인재 유출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지리적으로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유능한 인재들이 몰리지 않는다. 과거 수백대 1을 넘었던 채용 경쟁률은 한자릿수 혹은 아예 지원자가 없는 실정이다.

◇ 거시경제 소홀해진 민간연구소=국내 대형 민간연구소들은 대체로 대기업 산하에 있다. 과거와 달리 거시경제보다 기업 내부경영 관련 연구에 더 주력하는 모습이다.

약 250여명의 인재를 보유한 국내 최대 민간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2013년 10월 이후 국내·외 경제연구를 전면 중단하고 그룹경영 및 신사업 지원 등을 위한 인하우스(in-house)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성장률, 수출입 규모 등 주요 경제지표들은 내부적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공개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서는 거시경제 관련 전문가 영입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경력 수시채용도 산업공학, 경영 관련 전문가 위주로 선발한다.

LG경제연구원도 최근 신사업 분야와 중국 등 주요 해외시장 관련 리포트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100여명의 연구인력은 유지되고 있으나 거시경제 관련 별도 인력보강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모기업 경영난으로 타격이 컸다. 대주주였던 현대그룹이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지원이 대폭 삭감되면서 일부 감원도 단행됐다. 2010년 전후 50여명이 넘었던 석·박사급 연구인력은 현재 20여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다른 기관들보다 전문성이 앞섰던 북한 관련 연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한 민간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돈이 되지 않는 거시경제 파트나,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분야에는 연구개발비를 많이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점차 소극적으로 변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는 입법·사법·행정·언론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헤리티지재단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국제전략연구소(CSIS) △외교안보협의회(CFR) 등 이른바 '빅5' 싱크탱크가 내놓은 보고서들은 파급력이 상당하다. 이들은 외부로부터의 독립성과 영향력, 그리고 연구 결과물의 '질'을 최우선 가치로 내건다.

◇ 턱없이 모자란 경제·인문사회 싱크탱크…케냐보다 적어=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경제·인문사회 싱크탱크 숫자가 턱없이 모자라다.

미국 펜실베니아대가 발표한 글로벌 싱크탱크 평가자료(2015 Global Go To Think Tank Index Report)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싱크탱크는 지난해 말 기준 35개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1835개), 독일(195개), 일본(109개)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이란(59개), 케냐(53개)보다도 적다.

양질의 연구환경을 만들기 위해 인프라 구축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민간 경제연구소 운영 기업에 대한 세제, 금융혜택 등 다양한 지원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국책연구원장은 "싱크탱크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국가 정책도 크게 흔들리게 되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며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앞다퉈 오고 싶어하는 싱크탱크를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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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엄식 기자

머니투데이 산업2부.

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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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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