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6월 25일, 유치원에 간 딸이 학원 시간이 다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엄마는 직접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치원에서 아이를 찾자, 담당 교사는 "30분 전에 전화해서 아이를 보내달라고 하지 않으셨냐"고 되물었다.
그렇게 사라진 곽재은 양은 결국 서울 용산구 소재 숙명여자대학교 한 건물의 물탱크 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나이는 고작 여섯살.
아이를 유괴하고 살해까지 한 범인은 키 160㎝, 자그마한 체구의 20대 여성이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살던 곽 양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장맛비가 내리던 그날도 노란 우비를 입고 노란 우산을 챙겨 평소처럼 혼자서 등원했다.
범인 홍순영(당시 23세)은 유치원 주변을 서성이다가 우산꽂이 속 우산에서 곽 양의 이름을 발견하고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곽 양을 하원 시켰다. 담당 교사는 홍순영이 곽 양의 이름과 반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별 의심 없이 하원시켰다고 밝혔다.
아이가 사라진 걸 알게 된 곽 양의 엄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는 지인들에게 연락해 수소문했지만,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오후 5시 경찰에 유괴 신고를 했다.
실종 신고 24시간 뒤인 다음 날 오후 5시께 곽 양의 집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 홍순영은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아이를 돌려받고 싶으면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5000만원을 송금하라"고 말하고 1분 만에 전화를 끊었다. 당시 5000만원은 서울 근교의 30평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곽 양의 엄마는 다음날인 27일 500만원을 먼저 입금하고 28일에는 2500만원을 추가 송금했다. 이후 형사들은 계좌가 개설된 조흥은행의 서울 전 지점에서 잠복근무했다. 은행에 가거나 현금인출기를 이용해 돈을 인출해야 했던 시절이라, 범인이 돈을 뽑기만 하면 곧장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홍순영은 29일 명동 롯데백화점 내부 조흥은행 출장소 현금인출기에서 10분간 260만원을 인출했다. 주변 지점에 배치됐던 형사들이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고 한 형사가 막 돌아 나오던 홍순영과 눈이 마주쳤다. 형사는 그가 범인임을 직감하고 을지로입구역 계단에서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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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영은 "남자친구가 공범이다"라며 거짓 진술하고 공범이 기다리고 있다며 경찰을 서울역까지 이끌었다.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투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기관사가 급정거해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결국 공범은 없었고 홍순영은 "숙명여자대학교 한 건물의 물탱크 뒤에 재은이의 시신을 은닉했다"고 자백했다. 곽 양은 건물 옥상 물탱크 뒤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홍순영은 곽 양에게 엄마의 지인이라고 속이고 빵과 음료수까지 사주며 숙명여대까지 유인했다. 이후 부모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곽 양이 집에 보내달라고 보채자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 보도에서 홍순영은 숙명여대 출신 방송국 기자로 보도됐고 유복환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범행 동기에 의문을 품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이는 대부분 거짓임이 밝혀졌다.
홍순영은 대학 입시에 불합격하자 본인의 자존심과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짜로 '숙명여대생' 행세를 하고 다녔다. 또 우연히 주운 학생증으로 위조 학생증을 만들어 4년 내내 수업을 도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짜 졸업 후에는 KBS 기자로 취직했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학생 행세를 할 때는 부모가 준 등록금과 용돈을 펑펑 쓰고 다녔지만, 직장인 행세를 하니 더 이상 돈을 받을 수가 없었고 결국 궁지에 몰렸다. 결혼을 퇴사 핑계로 삼으려 했으나 남자친구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유괴를 선택했다.
홍순영은 사건 발생 반년 후인 1990년 12월 21일 서울지방법원동부지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후 항소했으나 1991년 9월 13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그해 12월 18일 다른 8명의 사형수와 함께 교수형으로 처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