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이 CJ대한통운이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과는 단체교섭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용자의 개념을 넓힌 노란봉투법 시행 전 발생한 사건에는 과거 노동조합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기존 법리가 유지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기조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이) 부당하다는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핵심 쟁점은 CJ대한통운이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택배기사들에 대해서도 사용자로서 교섭 테이블에 나와야 하는지였다.
택배기사들은 CJ대한통운과 직접 계약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은 CJ대한통운과 위수탁계약을 맺은 집배 점주와 다시 계약을 맺고 배송 업무를 했다. 집배 점주는 택배사와 구역별 운송계약을 맺고 해당 구역의 택배기사들과 위수탁계약을 체결해 배송망을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다.
1·2심은 작업환경 개선 같은 사안은 집배 점주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기 어렵고 CJ대한통운의 물류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았더라도 택배기사들의 업무 조건과 작업환경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봤다.
이 논리는 지난 3월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현 노동조합법)의 취지와 같다.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한다. 사용자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옛 노동조합법은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의 교섭 의무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대법원은 CJ대한통운이 노조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행위가 2020년에 이뤄진 만큼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법 시행 전 사건에 노란봉투법의 법리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5월 HD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도 HD현대중공업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합은 HD현대중공업 사건에서 노란봉투법 시행 전 사건에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안에 관해 종전 법리를 변경해 개정 노동조합법의 규정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의 법리를 창설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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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앞으로 발생하는 원청·하청 교섭 분쟁에서는 법원의 판단 기준이 달라질 전망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과거에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에 근로계약 관계가 있는지가 쟁점이었다면 현재는 원청이 근로조건을 실제로 좌우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원청의 사용자성은 교섭 의제별로 나눠 판단될 것"이라며 "안전·작업환경에 대한 의제는 사용자성이 인정되지만, 보수나 계약 해지 문제는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