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지하도보 살인사건

2024년 8월2일 새벽 서울 도심 한복판. 시민들이 오가기 전 거리를 정리하던 60대 환경미화원은 평소 안면이 있던 70대 남성이 휘두른 가위에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는 흉기를 막고 두 손으로 빌며 애원했지만 가해자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범죄의 잔혹성은 재판에서 지적되기도 했다.
가해자는 사건 직후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항소심에 이르러 범행을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진정한 반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감형 없이 징역 25년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이른바 '숭례문 지하보도 살인'으로 불린다.
사건은 당일 오전 4시40분쯤 서울 중구 숭례문광장 인근 지하보도에서 발생했다. 서울 중구청과 용역 계약을 맺은 업체 소속 환경미화원 조모씨(당시 64세)는 평소처럼 청소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때 70대 남성 리모씨(당시 71세)가 조씨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2023년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였다. 리씨는 평소 소지하고 다니던 길이 약 20㎝의 가위를 꺼내 조씨를 여러 차례 공격한 뒤 현장을 벗어났다.
오전 5시10분쯤 "누군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는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조씨를 발견했다.
조씨는 발견 당시 의식이 있는 상태였고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송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오전 6시20분쯤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피해자가 여러 차례 흉기에 찔린 '다발성 자창'으로 사망했다는 소견을 냈다.

리씨는 범행 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으로 이동했고 사건 발생 약 4시간 만인 당일 오전 8시50분쯤 검거됐다. 당시 그는 인근 여인숙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에서 리씨는 조씨가 물을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팔을 붙잡는 자신을 신고하겠다고 말하자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평소 지니고 다니던 흉기로 공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조씨가 평소 쌀쌀맞은 태도로 나를 무시한다고 느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직후에는 지하보도 청소와 노숙인 물품 정리 문제가 갈등의 원인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당시 중구청은 지하보도 물청소를 진행하며 방치된 개인 물품을 수거해 달라는 안내문을 게시한 상태였다.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도 두 사람이 이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제기됐다.

리씨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그는 취재진에게 "찍지 마요"라고 말하며 얼굴을 가렸다.
'혐의를 인정하느냐', '왜 범행을 저질렀느냐'는 질문에는 "몰라요"라고 짧게 답했다. 피해자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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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씨는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뒤 재판에서도 "우발적으로 범행했고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며 책임을 축소하려는 주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범행 동기와 잔혹성, 피해자와의 관계를 볼 때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피해자는 발등으로 방어하고 두 손으로 빌며 애원했지만 피고인은 시계를 보며 다시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리씨가 반성문을 제출하면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 점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반성하는지 의문"이라며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리씨는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범행을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형을 바꿀 정도의 사정 변경으로 보지 않았다.
대법원도 "원심의 형이 심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고 사건은 발생 약 1년 만에 법원 최종 판단으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