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플라스틱방앗간
2020년 시작해 7년 차 맞은 캠페인
플라스틱 병뚜껑 모아 분쇄 후 재가공
4톤 넘는 플라스틱에 새로운 쓸모 부여
시민 문제 제기가 기업 공정 변화까지 견인

지난 27일 찾은 서울 종로구 플라스틱방앗간. 시민들이 가져온 병뚜껑을 색깔별로 분류하는 공간 한편에 비닐봉지로 커버를 만든 다이어리가 놓여 있다. 제주 업사이클링 기업과 함께 진행하는 비닐봉지 수거 캠페인이다. 병뚜껑을 모으며 시작한 활동이 일상에서 버려지는 다른 자원으로 넓어지고 있었다.
플라스틱 보는 눈을 바꾸다
플라스틱방앗간은 서울환경연합이 2020년 시작한 시민 참여 캠페인이다. 출발점은 분리배출과 실제 재활용 사이의 간극이었다.
병뚜껑처럼 작은 플라스틱은 선별 과정에서 골라내기 어려워 다시 자원으로 쓰이지 못하는 일이 많다. 재활용할 수 있는 재질이어도 제대로 모이지 않으면 버려진다. 재활용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버려지는 자원을 다시 살려보자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었다.
플라스틱방앗간은 이 가운데 고밀도폴리에틸렌(HDPE)과 폴리프로필렌(PP) 소재를 따로 모아 재활용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분류한 플라스틱을 잘게 부수고 녹여 금형에 넣은 후 치약 등을 끝까지 짜 쓰는 튜브짜개와 생활용품으로 다시 만든다.

병뚜껑을 모아 제출하는 참여 시민들에게는 '참새클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참여 과정에는 세심한 수거 가이드를 뒀다. 병뚜껑 안에 다른 소재가 끼어 있지는 않은지, 스티커가 붙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세척·건조하도록 했다. 손에 쥔 쓰레기를 자세히 살펴보는 경험 자체가 캠페인의 일부였다.
초기 활동의 초점은 병뚜껑을 모으는 과정 속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덜 쓰고 덜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도록 하는 데 맞췄다.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다니는 회사 탕비실에 상자를 두고 이웃과 동료의 병뚜껑까지 모아오는 참여자도 생겼다. 설득력 있는 취지에 깊이 공감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주변 사람에게 참여 방법을 알리는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기업 생산 방식도 바꾸다
수거 방식도 돌아봤다. 초기에는 전국에서 택배를 받았지만 병뚜껑을 보내기 위해 상자와 테이프 등이 사용되며 운송 과정의 탄소발자국을 고민하게 됐다. 이후 종로구 거점에 방문 수거를 하도록 방향을 바꿨고, 시민들이 가까운 곳에 자원을 가져갈 수 있도록 지역의 제로웨이스트숍 등과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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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성을 공감한 이들이 늘어나며 참여 규모도 매해 커졌다. 서울환경연합에 따르면 2020년 시즌1에 687명이 참여해 256kg의 플라스틱이 자원화 된 뒤, 2021년 시즌3에는 참여자와 플라스틱 자원화 규모가 각각 4779명, 2282㎏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기간 공연장 내 부스에서 진행한 활동에는 5096명이 참여해 플라스틱 550㎏을 자원화했다. 캠페인이 시작된 2020년 이후 자원화된 플라스틱만 4.2톤이 넘고, 수거한 케이블 전선까지 더하면 약 4.5톤에 이른다(위 표 참조).
병뚜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생산 단계의 문제를 발견하고, 제조 공정의 변화를 촉구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플라스틱 뚜껑 안쪽에 고무패킹 등 다른 소재가 붙은 '이중 병뚜껑'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병뚜껑은 서로 다른 재질을 분리하기 어려워 재활용을 방해한다. 제품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플라스틱방앗간 등이 벌인 이중 병뚜껑 관련 캠페인은 실제 변화를 유도했다. 탄산음료를 만들던 제조사가 고무패킹 없는 단일 소재 병뚜껑으로 전환했다. 2021년 스팸의 노란 플라스틱 뚜껑 제거 역시 시민들의 문제 제기가 기업의 대응으로 이어진 사례다.

병뚜껑에서 시작한 이 캠페인은 다루는 소재와 일상 속 접점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8개 업사이클링·창작 브랜드와 손잡고 협업 전시를 진행했거, 지난 23일부터는 버려진 비닐봉지를 재활용해 다이어리 커버 등을 제작하는 제주 소재 기업 리어플라스틱과 함께 '모아모아 비닐봉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오는 12월 14일까지 편의점 봉투나 식품·의류 포장 비닐 중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방문 수거한다. 계절마다 배출 방법이 헷갈리는 쓰레기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안내하는 '제철쓰레기도감' 제작도 나섰다.
김자연 서울환경연합 시민참여팀 활동가는 "병뚜껑을 모은 다음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기다리는 시민들이 있을 것"이라며 "수거 품목뿐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과 단계도 넓혀가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