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취임 100일 맞는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

한지를 곱게 바른 집무실의 내부는 아담하고 포근했다. 창밖에 흐드러진 벚꽃도 운치를 더했지만, 아무래도 방주인의 따뜻한 정 때문인 듯 했다.
올 초 임명돼 취임 100일을 앞두고 있는 안호상 국립극장장(53)을 최근 찾아갔다. 장충동 국립극장 주변엔 봄꽃이 만발했다. 그는 취임 후 국립극장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일단 '없애는 일'부터 시작했다.
집무실에 접견공간과 책상 사이의 칸막이부터 없앴다. 관리동의 답답한 벽들도 허무는 작업을 계획 중이다. "주로 없애는 일을 하시네요"라고 농담을 건네자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다음엔 또 뭘 없애고 싶을까. 일단 '국립극장'하면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이 먼저 떠오른다. 가까이서 보면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대극장의 외관은 근엄하고 중후한데, 그 앞에 펼쳐진 수많은 계단의 위용은 특히 대단하다. 오랜 시간 예술가들과 관객들의 발길이 닿은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는 이 계단을 없애면 좋겠다고 했다. "계단 없이 평지에서 바로 극장으로 걸어들어 가게 하면 극장의 권위적인 느낌이 사라지고 관객을 포옹하는 마음을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극장 건물이 일본 신사의 건축양식을 본 딴 것이기도 해서 나름의 명분도 있다.
안 극장장은 "공사를 하려면 일단 예산도 필요하지만, 대극장 건물이 주는 상징성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기존 예술가들이나 관계자를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 처리에 있어 무조건 밀어 붙이지지만은 않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안 극장장은 관객과의 소통, 예술가들과 상의하고 조율하는 작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국립극장의 지리적 위치가 접근성이 썩 좋은 편도 아니고, 올리는 공연도 다소 무겁고 어렵다는 인식이 깔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국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려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국악이나 전통극을 무조건 쉽게 풀어서 관객들에게 내놓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견해다. "국악은 기초과학처럼 그 존재 자체로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거죠. 기초과학 영역이 단단해야 다양한 응용기술과학이 꽃피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 아닐까요."
그는 또 "창극이 우리의 전통이니까 배우고 살려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 전위예술(아방가르드) 차원에서 오히려 신선한 장르라고 접근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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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극장장은 '공연'이라는 장르는 다른 산업과 달리 공급이 많아지면 수요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이 '도가니' 같은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서 만든 건 아니잖아요. 먼저 '도가니'를 만들고 나니 그것을 보려는 관객이 생겨난 것이지요."
하지만 만드는 사람 위주가 아니라 관객이 좋아하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위해 준비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지원하는 재원으로 국민이 원하는 공연을 하는 건 당연하죠.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공연이 국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작품성도 인정받아 국제적으로 국가의 위상 제고에도 기여한다면 국립예술단체가 발전할 수 있는 여지도 더 커질 거라 믿어요."
그는 또 국립단체에 맞는 '국립레퍼토리'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올 가을시즌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축적된 역량을 모아서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이라는 안 극장장의 표정에 자신감이 실렸다.
먼저 작품의 질로 승부를 걸어 관객을 동원하고, 위상을 높이면 국가의 지원도 차츰 늘지 않겠냐고 했다. 이어서 그는 국립극장 대극장을 '창극 전용극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내비췄다.
창극 전용극장은 오페라 전용극장과 비슷한 조건을 갖추면 되는데, 마이크 없이도 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창극 작품 수도 현재는 1년에 3편정도 무대에 오르는데, 앞으로는 6~7편정도 선보일 계획이다.
안 극장장이 공연·문화계에 몸 담은지도 근 30년이 되어 간다. 그가 전통 국립예술단체들의 기량을 잘 살려내 '법고창신'(옛 것을 본받아 새 것을 창조함)의 정신을 구현해 내는 데 디딤돌이 되길 기대해 본다.
안호상 극장장은...

국립극장의 직원들은 안호상 극장장에 대해 "열심히 뭔가 하고 싶게 동기를 주는 분"이라고 말한다. 30년 전 우리의 공연문화를 구축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그이기에, 직원들에게도 늘 용기와 긍정의 힘을 심어주는 게 아닐까.
안 극장장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청주고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1984년 서울 예술의전당 공채 1기에 뽑히며 공연계에 몸담게 됐다. 23년간 전당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공연 기획 전문가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07년부터 약 5년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냈고, 2009년부터 작년까지 대통령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지난 1월 16일 국립극장 극장장으로 임명됐으며 현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