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 시인의 詩가 있는 밥상]죽어서 주는 것과 살아서 주는 것

[오인태 시인의 詩가 있는 밥상]죽어서 주는 것과 살아서 주는 것

오인태 시인
2013.10.21 07:28

<66>누룽지삼계탕 그리고 '가을이'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며칠 전, 페이스북 친구의 담벼락에서 ‘죽어서 주는 것’과 ‘살아서 주는 것’의 차이를 돼지와 소의 우화를 들어 얘기하는 것을 읽었는데요. 이런 요지의 글이었습니다.

돼지는 죽어서야 살코기든 내장이든 피든 뼈든 사람에게 다 주는데, 소는 살아서도 사람들에게 우유를 주니 둘 다 주는 것이긴 하지만 그 의미나 가치가 전혀 다르다는 얘기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소를 더 예뻐하고 귀히 여긴다는 것이었는데, 일리 있는 말이다 싶었습니다. 물론 순전히 사람의 입장에서 본 시각이긴 합니다만. 이 이야기의 기의는 이미 자기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주는 것은 사실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자신에게도 필요한 것이지만 나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선뜻 줄 수 있어야 진정으로 베푸는 것이라는,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누군가가 필요로 한다면 선뜻 내줄 수 있는가, 부끄럽게도 자신할 수 없군요. 물론 상대를 따져 설령 누군가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내놓을 수 있을지라도, 필시 그 ‘누군가’는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줄 수 있을 만큼 내가 아끼는 사람일 것이므로, 이렇게 무엇이든 조건이 붙는 것은 진정한 이타심이나 선의로 보기 힘들겠지요.

누룽지삼계탕인데요, 쌀 대신 누룽지를 넣고 끓였더니 색다른 맛을 내는군요. 백숙도 솥 밑에 눌어붙어 있는 것이 더 쫄깃하고 고소하잖아요. 아무래도 거기서 착안한 것이 바로 이 누룽지삼계탕이 아닌가 싶은데요, 가을이 노릇하니 좀 고소해졌나요?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