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꼬막무침비빔밥 그리고 '돼지-뒷간추억2'

<오인태의 시가 있는 밥상>이 이번으로 97회가 되는군요. 100회를 눈앞에 둔 이쯤 출구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화제 하나를 끄집어내보는 건데요. 입구가 있으면 마땅히 출구가 있는 법이니까요.
‘똥돼지’를 아시나요? 시와 밥을 음미하는 자리에서, 그것도 새해 벽두에 하필 똥 얘기라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 이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지요. 어찌 똥의 소중함이 밥에 뒤진단 말인가요. 먹기만 하고 싸지를 못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잖아요. 똥이 없으면 밥도 없는 거지요. 밥 잘 먹고 똥 잘 싼다면 인생은 만사형통인 건데요. 세상사도 마찬가지지요. 생산과 분배, 소득과 소비, 공급과 수요가 밥 먹고 똥 싸는 순리대로만 흘렀던들 오늘날 국민대다수가 ‘안녕하지 못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추억컨대, 어릴 적 시골 뒷간에는 늘 돼지가 있었지요. 새카만 토종돼지, 이른바 '똥돼지'였는데요. 똥을 싸는 일은 이 똥돼지와의 한판 신경전이었지요. 자칫 겨냥을 못해 귓부리에다 흘려놓으면 이놈의 도리질에 그 파편이 엉덩이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었는데요, 말하자면 돼지의 반격인 셈이지요. 설사라도 걸린 경우엔 그 낭패라니. 그래서 때로는 신문지나 비료포대 종이에 총구만 내어놓고 방패로 삼아보기도 하지만, 그 시절엔 이런 종이도 흔치 않았는데요. 종이가 워낙 귀해 볼일을 보고 난 뒤처리를 옥수수 껍질이나 지푸라기로 했을 때이니 말이지요.
세월은 가고 콜라, 햄버그, 피자 따위 다국적 식품을 먹으며 양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는 요즘은 바야흐로 다국적 시대인데요. 불현듯 내 엉덩이에 똥 세례를 안기던 토종돼지의 그 고집스럽게 세운 귓부리가 그리워서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