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꽃 지는 고요를 다 모으면 한평생이 잠길 만하겠다
[편집자주] "나는 세상의 풍경을 읽는 자가 아니라 풍경 속의 일부가 되어 풍경과 나란히 걷고 있는 자이다."(김주대 시인)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얇디 얇은 울림판 같은 몸을 가진 그는 모든 존재를 의미 있는 기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풍경 속에서, 거대하게는 우주의 근원에서 솟구쳐 오르는 어떤 징후를 감지하고 광인처럼 소리치는 사람이다. 생의 우연한 순간에 마주친 모든 존재가 그에게 가서 그림이 되고 시가 된다. 그의 문인화가 특별한 이유이다.

웅변보다 침묵이, 소란보다 고요가 더 크게 사람을 움직일 때가 있다. '자기광고'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때로 침묵이 얼마나 더 큰 웅변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목숨 가진 것들의 악다구니에서 잠시 벗어나 '꽃 지는 고요'에 잠긴다면 생은 고요만큼 깊어지고 정신은 경험하지 못한 다른 높이에 이를 것이다. 아직은 겨울이지만 잠시라도 꽃 피는 봄날, 꽃 지는 봄날 오후의 어느 고요 속에 앉아보고 싶은 맘 간절하다.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시간은 우리 몸속의 소란스러움과 가식들을 떨쳐내고 삶의 진면목에 다가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굳이 깊은 산 속이나 암자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나를 떠나 있던 나를 불러들여 내게 귀 기울이기, 가슴 깊은 곳의 침묵과 고요를 나지막이 불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