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前대통령 연설문은 어떻게 나왔을까

김대중·노무현 前대통령 연설문은 어떻게 나왔을까

이언주 기자
2014.02.21 08:35

[저자를 만났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어떻게 글 써야 사람의 마음 움직이는지 배웠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그는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서 8년간 일하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보고, 듣고, 배운 '말과 글'에 관해 책을 썼다. /사진=이동훈 기자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그는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서 8년간 일하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보고, 듣고, 배운 '말과 글'에 관해 책을 썼다. /사진=이동훈 기자

어디 가서 글 한 줄만 빌려달라고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작가든 기자든 밤낮 글 쓰는 글쟁이라도 글자 하나, 문장 하나가 궁할 때가 있기 마련. 하루에도 수십 통의 문자와 카톡을 보내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다가도 어느 순간 어렵다고 느껴지는 게 '글쓰기'다. 마음껏 잘 쓰고 싶다. 누가 그 비결을 알려주기만 한다면 삼고초려를 못하랴.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 나왔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이란 부제가 붙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하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대통령은 글을 어떻게 썼을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었던 사람. 김대중 대통령 때는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노무현 대통령 때는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강원국씨(52)가 그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전주 출신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던 때 '스피치라이터'로 일했다. 대우증권과 벤처기업, KG그룹 등에서 일하며 20년 넘게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다. 지금은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주간으로 재직 중이다.

- 대통령의 생각을 파악해 글을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몇 번이고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쓰게 한다. 대통령한테 혼나면 어디 도망갈 데가 없다. 바닥도 없는 곳으로 푸욱 꺼지는 느낌이랄까. 안 겪어보면 모른다.

노 대통령 취임 첫해 3·1절 연설문을 작성했다. 노 대통령은 역사를 왜곡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전하고픈 얘기가 있었다. 그 내용을 공보수석실에 얘기했는데 연설비서실로 전달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3월1일 아침, 그 내용이 빠진 것을 알고 대통령은 진노했고, 메모지 한 장에 연설할 내용을 정리해 행사장으로 떠났다. 나는 일본 관련 메시지를 넣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위서를 작성했다.

이 사건 이후 노 대통령은 근본적인 조치를 지시했다. 연설비서관실을 공보수석실 소속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고, 사무실도 비서동(본관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서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으로 옮겨, 집무실 바로 옆방에 오게 했다. 국민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연설비서실부터 대통령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의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 연설문의 성격에 따라 담당자가 따로 있나

▶ 연설비서관실엔 행정관 4명을 포함해 나까지 모두 5명이다. 내가 잘 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독회제도'를 만든 것이다. 글을 혼자 쓰는 게 아니라 집단 창작을 하는 것이다. 물론 초안을 쓰는 사람은 있다. 그것을 보고 함께 토론하고 고치면서 결론을 낸다. 그러다 보니 우리끼리도 경쟁관계가 아니라 연대관계가 됐고, 혼나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칭찬받을 땐 다 같이 기뻐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누가 쓰든 비슷한 톤으로 균형 잡힌 대통령의 연설문이 나왔다.

- 연설비서관에겐 어떤 자질이 가장 필요한가

▶ 대통령 연설문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절대적인 성실함과 인내심이 필요하고 맷집도 있어야 한다. 나는 사실 글쓰기에 젬병이었다. 하지만 끈기 있게 훈련하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이 툭툭 불러주면 말귀를 잘 알아듣고 얼개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

- 내가 쓰지만 결코 내 글이 아닌 연설문. 남의 글을 쓰는 어려움이란

▶ 연설문에는 내가 없다. 대통령이 빙의돼야 한다. 천하의 문필가를 데려다놔도 자기 목소리가 강하면 연설문은 못 쓸 거다. 연설비서관실로 대통령의 24시간 녹취록이 온다. 대통령의 생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매일 흐름을 파악한다. 듣다보면 생각이 바뀌는 미묘한 지점이 있는데 그걸 잘 알아차려야 한다. 새로운 화두에 꽂혔는데 여전히 과거의 생각을 쓰면 소위 '개 박살'이 난다. 논리를 새로 만들고 사례를 수집해서 논지를 뒷받침해야 한다.

- 두 분 전직 대통령은 너무 다르다. 원하는 글의 유형도 달랐을 텐데

▶ 김 대통령은 청중과의 '교감'을 강조했고 직언 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나 '햇볕정책'과 같은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이해하도록 했다. 두 가지를 강조했는데, '반걸음만 앞서갈 것'과 '손을 놓지 말라'는 것이었다. 청중이 따라오지 않으면 잠시 멈춰 서서 듣고 이해해줄 때까지 설득하라고 했다. 공감하지 못하는 글·연설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또 두세 걸음 앞으로 나서면 마주 잡은 손이 떨어지니 따라올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나란히 가면 발전이 없으니 손을 잡고 반걸음 앞서갈 것을 주문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소통'을 중시했다. 당시 '소통'이란 말이 유행하진 않았지만 대통령은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생각을 궁금해 했다. 지시와 명령을 주로 하는 통치가 아닌, 국민들을 설득하고 참여시키는 협치를 하고자 했다.

연설문은 상대를 배려하고 교감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직접적인 언어로 짧게 쓸 것을 요구했다. 늘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는 한 단어, 한 문장을 찾기 위해 애썼다. 더 이상 덜어낼 게 없는 간결한 문장으로 만들라고 했다. 광고 '카피'나 '표어'처럼 말이다. 그래서 인사 청탁은 안 된다는 단호함을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로, 부동산 투기 근절 의지는 "강남불패면 노무현도 불패다"라는 말로 다소 과격하지만 분명하게 함축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과 글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들과 진심으로 함께 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여부와 진정성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이동훈 기자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과 글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들과 진심으로 함께 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여부와 진정성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이동훈 기자

-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있나

▶ 글쓰기의 바탕은 삶이다. 좋은 삶이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책을 많이 읽고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고 하는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다. 두 분 대통령은 진정 좋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았고 역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생각이 깊고 넓었기에 그러한 글과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이 '불통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정보를 많이 주는 것과 소통은 다른 얘기다. 말과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전직 두 대통령의 설득력이 다시 기억되는 이유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 정치적으로 두 대통령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치색을 떠나서 '전략적 글쓰기'란 무엇인지, 어떤 연설이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글을 쓰고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독자와 청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가. 그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나

▶ 노 대통령이 글쓰기에 대한 책을 쓰라고 하셨다. 임기 4년차에 주문하신 건데 그 당시는 너무 바빠 도저히 불가능했다. 2006년에 지시하신 걸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수행하게 됐다. 지난 두 달 간 책을 쓰면서 정말 행복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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