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남자' 차가운 쇳덩이에 열정을 새기다

'불의 남자' 차가운 쇳덩이에 열정을 새기다

이언주 기자
2014.09.06 05:05

[인터뷰] '불꽃으로 춤을 추는' 조각가 이성민

길게 뻗은 꼿꼿한 자태는 강인하면서도 부드럽다. 포즈를 취하는 '댄서'의 움직임에서 찰나의 미학이 느껴진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표면을 지나간 '붓질' 같은 것이 셀 수도 없다. 쇳덩이에 그림이라도 그린 것인가.

'불꽃으로 춤을 추는' 조각가 이성민(39)의 작품 얘기다. 그는 10년 넘게 불로 쇠를 녹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붓질은 바로 불이 지나간 흔적이다.

5일부터 시작해 10월31일까지 서울 평창동 키미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룹전에 함께한 이 작가의 작품에선 시선이 절로 멈춘다. 이번 전시는 '맥시마'(MAXIMA)란 주제로 키미갤러리 전속작가인 이 작가 외에 회화 작업을 하는 권선영, 이채원, 임시호 작가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평면 회화 작품들 가운데 자리한 이 작가의 조각은 전시공간에서 꽤 매력적으로 어우러진다.

"이 작업은 우연한 발견이었습니다. 2000년에 대학 졸업전시를 준비하다가 철을 자르려고 산소절단기를 사용했던 것이 계기가 됐죠. '혹시 큰 쇳덩어리도 잘릴까?'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잘리더라고요."

이 작가는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나무를 깎아서 태우는 작업을 하다가 2004년부터 다시 불을 잡기 시작했다. 2007년 인사동 갤러리큐브스페이스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불로 쇠를 녹이는 작가'로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이성민, Dancer-man, 35x7x70cm, iron, 2013 (왼쪽)
Dancer-woman, 25x7x70cm, iron, 2013 (오른쪽)
이성민, Dancer-man, 35x7x70cm, iron, 2013 (왼쪽) Dancer-woman, 25x7x70cm, iron, 2013 (오른쪽)

그의 작품은 주로 '서있는 사람' 혹은 '춤추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서 있는 조각상도 그저 우두커니 있는 것이 아닌 미세한 동작이 관찰된다. 이번에 전시되는 '댄서 연작' 역시 자유롭고 유연한 움직임의 연속이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업도 결국은 'Do(두) - 움직이고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팔다리가 가늘고 긴 그의 인체작업은 현대미술의 거장인 스위스 조각가 자코메티(1901~1966)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가는 "자코메티를 좋아했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작업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자코메티는 뼈대에 살을 붙여 표현하는 소조 방식을 쓰는 반면, 이 작가는 녹여서 깎아내는 기법을 고수한다. 쇠를 녹이는 작업은 누가 봐도 힘든 작업이다. 실제로는 어떤 고충이 있을까.

"30도가 넘는 한여름 불볕더위에도 무거운 작업복을 입고 불쇠를 녹여내야 합니다. 온몸에 물을 흠뻑 적시고 일을 시작해도 금세 몸에 땀이 흐르죠. 진행하면 할수록 어려워지고 코너에 몰린 느낌이 들 땐,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아요."

이토록 고된 작업으로 탄생하는 '불꽃 조각'은 어떤 예술이며, 이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걸까. 작가는 여전히 이 작업에 대해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이성민, Dancer standing on one leg, 10x10x70cm, iron, gas cutting, 2014
이성민, Dancer standing on one leg, 10x10x70cm, iron, gas cutting, 2014

"다만, 쇠를 녹이는 작업에서 분명히 매력을 느낀 게 있습니다. 바로 작업물과 저 사이에 묘한 공간이 있다는 거죠. 직접 손으로 매만져서 작품을 만들지 않고, 산소절단기를 통해서 하니까 불꽃이 지나는 그 공간만큼 거리가 생긴다는 점이 좋았어요."

이 작가는 또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존재로 살고 있는지, 친구, 가족, 사회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며 "작품을 보는 이들도 '존재'와 '관계'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벨기에에서 초청받아 한차례 개인전을 여는 등 해외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10일간 열린 이 전시는 현지 미술애호가들의 호응을 얻으며 전시작품 12점을 모두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작가는 훌륭한 작품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작가의 순수한 열정과 불꽃 튀는 작업의 결과물은 이번 전시에서도 '뜨겁게' 만나볼 수 있다.

산소절단기로 작업하는 이성민 작가의 모습은 조각가라기 보단 마치 용접공을 보는 듯 하다. 불꽃 튀는 작업실은 그의 열정까지 더해 하루하루 더 뜨겁게 달아오른다.
산소절단기로 작업하는 이성민 작가의 모습은 조각가라기 보단 마치 용접공을 보는 듯 하다. 불꽃 튀는 작업실은 그의 열정까지 더해 하루하루 더 뜨겁게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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