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앙코르 공연 '붓다'의 2대 주인공 오창익…"붓다의 고행 무용의 삶과 비슷…허기 참으며 절제"

기름기 하나 없는 푸석한 얼굴, 제법 정확하지만 다 죽어가는 목소리. 대체적으로 ‘건조해’ 보이는 이 남자, 여린 샌님처럼 조용하고 온화했다. 가끔 얼굴에 번진 흐릿한 미소속에서도 뭔가 고뇌에 찬 흔적을 지우지 못하는 표정은 습관처럼 몸에 밴 듯했다.
그의 요즘 일상은 그렇게 소비된다. 하루에 먹는 음식은 초콜릿이나 커피 한잔, 빵 부스러기 정도가 전부고, 많이 걸으며 무상무념에 전념하는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허기를 참고, 휴식을 마다하는 과정속에 하루를 마친다”고 했다.
지난 2012년 초연한 현대무용극 ‘붓다, 일곱 걸음의 꽃’의 두 번째 ‘붓다’ 주인공이 된 무용수 오창익(33) 얘기다. 오는 31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이 앙코르 공연에서 그는 종교인 붓다에서 인간 싯다르타까지 다양한 모습을 춤으로 표현한다.
그는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의 신인 무용수의 등용문인 ‘스파크클레이스’에서 신인상을 받고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 ‘붓다’ 역의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고행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붓다’는 고행을 통해 깨달은 부처를 의미하는데, 무용수의 삶이 붓다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매일 하는 무용연습이 사실은 고행 같거든요.”
기독교 신자인 그가 붓다에 동화되기까지 자신을 설득시킨 논리는 종교의 밑바탕은 같다는 평등의식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스님이 쓴 책과 글, 화보집을 통해 공부하고 연구했다.
“붓다에게서 여리고 여성적인 느낌을 많이 발견했어요. 외형적으로는 손톱도 길고, 내면적으로는 고귀하지만 되게 인간적으로 순수한 느낌이었죠. 그런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하기위해선 어떤 테크닉보다 붓다의 감정이나 이미지를 몸에 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섬세하고 절제된 춤이 강조된 초연 때보다 더 거칠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것이 그가 내세우는 차별화 전략이다. 오창익은 “감성적 전달이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얼마나 진정성있게 작품을 해석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고 했다.
붓다 연기를 위해 그가 전력투구한 일들이 표정연기와 체중감량이었다. 고행의 과정을 손이나 발 동작만으로는 전달력이 부족해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 안무에 힘을 쏟은 것. 얼굴 표정 연기에 전체 무용의 50%나 할애했다는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었던 표정들이 다 나온 것 같다”고 웃었다. 탈의한 상의속 근육들이 앙상해 보이는 것도 고통의 흔적을 감싸안으려는 시도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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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근육질의 몸을 갖고 연기하기에는 부담감이 컸어요. 마치 소림사의 춤 같은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체중을 줄이려고 했어요. 어떻게 보면 붓다의 삶을 매일 체험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오창익은 무용계 늦깍이다.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에 입학했다 적성에 안맞아 중퇴한 뒤 23세 나이에 무용(중앙대 무용학과)을 처음 시작했다. 그때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위해 수면외엔 오로지 무용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회의도 적지 않았다. 추상적인 춤으로 무엇인가를 정확히 표현하고 ‘진실’을 찾아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같은 물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 한 선생님으로부터 ‘무의식의 영역에 소통이 존재한다’는 설명을 듣고, 모호했던 춤의 정의를 다시 해석하며 매진할 수 있었다.
춤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의 사고 역시 점점 내면화된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상품에 대한 회의에서 예술의 순수성으로, 재미있고 즐거운 테마에서 무겁고 진지한 쪽으로 춤에 대한 시각이 더 깊어졌다. 춤이 붓다의 고행과 같다는 의미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몸이 아파보이는데 (이미지를 위해) 굉장히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 차와 괴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물질은 갈수록 최신화하지만, 우리는 기력을 잃고 늙어가지 않나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는 삶에 대한 생각들을 춤을 통해 매일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붓다, 일곱 걸음의 꽃’은 붓다가 7개 고행(걸음)으로 얻은 해탈(꽃)이라고 그는 해석했다. 붓다의 걸음을 본 적은 없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의 걸음걸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가 다시 고행의 길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