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새책]'음식의 언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허기 채워주는 밥상 인문학"

이상하지 않은가. 케첩(ketchup)은 토마토로 만든 소스인데, 굳이 ‘토마토케첩’이라고 붙여 쓴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던 이 중복의 단어에 대해 7살짜리 아이가 “왜?”라고 물었다. 마침 홍콩에서 광둥어를 공부하던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댄 주래프스키는 조카의 질문에 난감해했다.
주래프스키 교수는 어원을 파기 시작했다. 케는 푸젠성 방언으로 ‘저장된 생선’을 뜻하고, 첩은 ‘소스’를 의미했다. 19세기 선교사 사전에서 찾아낸 답이다. 화교들은 이 케첩을 인도네시아 등지로 가져가면서 생선 소스로 사용했다.
그렇게 ‘소스’는 해적과 선원들의 칵테일 버전으로, 제인 오스틴이 즐겨먹던 레시피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엔 지금의 ‘토마토케첩’으로 위용을 발휘했다. 이렇게 세월을 타고 변용되다보니, 미국의 국민 음식이 된 케첩에 토마토를 붙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통 없는 한낱 가공품에 불과했던 케첩이 실은 위대한 문명의 모태에서 만들어진 훌륭한 음식이라는 배경도 읽혔다.
화덕에 구운 빵을 의미하는 토스트(toast)는 어떻게 ‘건배’의 의미로 확장됐을까. 17세기까지 토스트는 와인을 먹을 때 한쪽을 담가먹곤 했던 용도가 전부였다. 이런 전통이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인 17세기, 영국의 식사자리에는 누군가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건배’(토스트)를 자주 입에 올렸다.
‘음식의 언어’는 음식이 지닌 이름을 따라 역사와 문화를 재창조하는 음식의 인문학이다. 그렇게 따라가는 역사의 현장에는 동양과 서양이 조우하고, 문명의 상관관계가 조밀히 포착된다.
단순히 음식의 이름이 지닌 어원의 배경만 들춰내는 것이 아니다. 그 음식이 지닌 경제적인 함수,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의 숨겨진 전략 등 경제문화적 속성도 밝혀낸다.
값비싼 레스토랑은 저렴한 레스토랑보다 요리 가짓수가 반밖에 없고, 고객의 선택권 역시 3분의 1로 제한된다. 복잡한 메뉴 없이 ‘주는대로 먹으라’는 제한은 신뢰와 특권을 상징하는 고급레스토랑의 전략인 셈이다.
저렴한 음식과 값비싼 음식을 나누는 기준도 어떤 표현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저렴한 식당에서 나온 음식이 마음에 들 땐 ‘마약’ ‘중독’ 같은 수식어을 붙이기 십상. ‘섹스’라는 단어와 가장 많이 결부되는 음식은 스시와 디저트다. ‘해변에서의 섹시 롤’ ‘녹은 초콜릿 케이크…솔직히 말해 접시 위의 오르가슴’ 같은 표현들이 난무했다. 댄 주래프스키 교수가 레스토랑 리뷰 100만건을 추출해 조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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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테이토 칩을 두고서도 계급의 구별짓기가 드러난다. 일반 포테이토 칩은 ‘트랜스지방 제로’ 같은 건강성을 바탕으로 ‘우리 칩의 특별한 맛은 어디에서 올까’정도의 문구가 삽입되지만, 고급 칩은 더 복잡하고 부정적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우리는 천연재료를 사용하며, 모든 준비단계에서 칩을 테스트해 폼질과 맛을 보장한다’ 같은 식이다. 저자의 희귀분석법에 따르면 ‘절대 (튀기지 않는)’ ‘No’ 같은 부정어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칩 10g당 1.5원이 올라갔다.
사소한 음식 하나에도 깊고 오랜 사연을 들려주는 이 책은 음식이 곧 세계경제의 역사를 꿰는 단추이자, 인류 문화의 심리를 훑는 열쇠임을 각인시킨다.
저자는 “음식의 언어는 문명화와 광대한 지구화 사이의 상호연관성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통찰력까지 제시한다”며 “결혼식에서 건배를 외치거나 길거리에서 포테이토 칩을 살 때 우리는 음식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의 언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댄 주래프스키 지음/김병화 옮김/어크로스/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