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전 오늘…'20세기 위대한 성자' 총탄에 쓰러지다

68년 전 오늘…'20세기 위대한 성자' 총탄에 쓰러지다

박성대 기자
2016.01.30 05:45

[역사 속 오늘]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서거

마하트마 간디/출처=위키피디아
마하트마 간디/출처=위키피디아

"나는 인도의 한 시민으로서, 양심을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위해 정의를 행하고자 한다. 이 신념 때문에 처벌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중죄인이 될 명예를 얻고자 한다. 이 세상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자는 내 속에 있는 양심이다."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상징되는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1948년 1월30일 뉴델리 거리에서 힌두교 광신자 나투람 고두세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1년 전 인도·파키스탄 분할 독립으로 인해 힌두교와 이슬람 신도간의 대립이 격화되자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벵갈과 뉴델리를 방문하던 중에 당한 참변이었다.

1869년 인도 서부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난 간디의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다.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는 인도의 문호 타고르가 붙여준 것이다.

평범한 생활을 하던 간디는 1887년 영국으로 유학해 법률을 공부했고 귀국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1893년 소송 사건을 의뢰받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향했는데 남아공에서의 생활은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기를 가져왔다.

일등칸 표를 끊어 기차에 오른 간디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역무원과 경찰관에 의해 기차 밖으로 끌려 나오게 됐다. 이 일은 그에게 백인들에 의한 유색인종들의 인권 차별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그는 '사티아그라하'(압박에 대한 투쟁)를 전개했고 세 차례의 투옥속에서도 인도인들에 대한 차별법을 폐지시키며 정신적 지도자로 성장했다.

1915년 조국으로 돌아온 간디는 수행자들의 거처인 아슈람을 만들어 무소유 공동체 정신을 실천해나갔다. 그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고 직접 물레를 돌리며 옷감을 짜서 입는 운동도 같이했다.

1930년 간디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었다. 그는 노벨 평화상 수상 후보자에 4번이나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하지만 간디가 열망하던 종교를 뛰어넘는 통합은 이뤄내지 못하고 힌두교도의 인도와 이슬람의 파키스탄으로 분리된다.

두 종교간의 갈등은 결국 이듬해 위대한 사상가의 목숨을 앗아간다. 1999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1000년간 '최고의 혁명'으로 영국 식민통치에 저항한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꼽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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