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김창규 SF작가 심사평

<예심 총평>
◇중단편 부문=두 번째 과학문학상 공모전의 중단편 응모작에서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첫째, 소재가 인공지능으로 크게 경도되어 있었다. 최근 인공지능이 과학기술계의 큰 화두임을 감안하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아쉽다. SF의 과학적 요소와 문학성 가운데 전자에 더 무게추를 싣고 손쉬운 영감에 글을 맡긴 흔적이 곳곳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공지능이라는 광대한 가능성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전형성에 갇혀버린 응모작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런 작품들이 주로 1인칭 독백 형태를 취한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1회 과학문학상에 응모했던 작품들보다는 SF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은 글들이 상대적으로 늘었다. 흔히 SF가 과학적 아이디어나 소재 중심의 장르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SF를 반밖에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착상은 곧 작품 속 세계에 전적으로 녹아들어야 하고, 그 세계는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풍경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특히 지면에 여유가 적은 중단편에서는 세계의 새로운 풍경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능력이 크게 요구된다. 이 점을 제대로 염두에 두고 집필한 작품들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장편 부문=SF가 주는 경이감의 초점을 최대한 모을 수 있는 형식이 중단편이라면 장편은 작가의 호흡과 지휘 능력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장이다. 긴장이 꾸준히 유지되도록 사건을 적절히 안배하고 결말에서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장편소설의 문턱이라고 볼 때, 적어도 안배라는 면에서는 응모작들이 모두 일정 수준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 중단편과 달리 SF의 본질과 멀리 떨어진 작품들이 많아 당혹스러웠다. 천문학 용어만 살짝 도입한 황실 이야기나 과학적인 최소한의 개연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우주 활극은, 비록 오락성이나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으나 ‘SF’라고 보기 어려웠다. 주제의 무게감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독자적인 사유도 없이 종교적인 세계관을 작품 속에 욱여넣은 어느 글은 작가가 SF를 피상적으로 이해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중단편과 달리 장편부문 응모작들은 이처럼 SF에 대한 이해도가 양극으로 나뉘는 특징이 있었다. 그 결과 통과작을 선별하는 일은 중단편 부문보다 수월했다. 작품의 완성도는 높으나 과학문학의 범주에 들지 못해 아쉽게 탈락한 응모자들이 다른 장르에서 빛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들의 PICK!
<본심 심사평>
◇중단편 부문='관내분실'은 일독을 마치는 순간 대상작으로 거의 낙점했던 작품이다. 결국 다른 후보작들을 읽은 뒤에도 그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작품 속에 등장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크게 독창적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꼭 필요한 기술들만을 골라서, 필요한 만큼의 소품으로만 활용하고 주인공 지민의 이야기와 고민을 그 위에 탄탄하게 쌓아두었다. 좋은 SF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고, 작가는 그 덕목을 능숙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좋은 소설이 멋진 소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계와 삶과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고민이 필요하다. '관내분실'은 그 점에서도 합격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연결될 수 있고 어느 지점에서 공감하는가. 이 작품은 마음속 깊은 곳에 반쯤 묻힌 당혹감과 절망을 선보이고 독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 결론이 가늘면서도 질긴 현이 되어 읽는 이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작가의 설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관내분실'은 그렇게 모범적인 설계도의 예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라디오 장례식'은 SF만이 제대로 맛보여줄 수 있는 ‘극한 상황 소품’이다. 총체적인 절망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성을 잃고, 그 사이에 로봇이 끼어든다. 로봇과 인간 모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남아 있는 인간성이 드러난다. 소품이 갖는 한계와 매끄럽지 못한 문단 나열이 아쉽다.
'마지막 로그'는 SF 클리셰를 균형있게 조합하려 시도했고 어느 정도 성공한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이 후반에 접어들며 갑자기 바뀌는 화자의 어조와 쏟아지는 용어들이 감상을 방해한다. 결말이 클리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도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완성도가 매우 높은 소설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 같았던 경이감이 인물 개인의 소회에 뒤덮이는 바람에 둘 모두 빛이 바랬다. ‘기술 발달로 무의미해진 옛 기술’이 SF에서 이미 수없이 소비되었던 소주제라는 점도 아쉬웠다.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는 부조리한 상황과 이중적인 인간 사이에 로봇을 집어 넣어 독자로 하여금 제삼자의 시선을 갖도록 유도하는 작품이다. 작품 내에서 그 유도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굳이 신부가 등장할 필요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가작에 올렸다.
'독립의 오단계'는 SF와 재판물을 결합한 시도가 좋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논리를 파헤치는 이야기이면서도 재판 과정에서 등장하는 진술들은 그것과 동떨어져 있어 산만하다는 느낌이 남는다.
◇장편 부문=당선작인 '에셔의 손'은 여러 가지 실험과 꾸준한 노력으로 단련된 작가의 작품이다. 보통 사이버펑크물의 바탕을 이루는 디지털 세계는 일반 독자가 단숨에 이해하기 힘들다. '에셔의 손'은 관련된 상징을 과감하게 던져놓고 그에 걸맞은 표현을 구사해서 문턱을 능숙하게 뛰어넘었다. 도입부의 강렬함을 의식했는지 중반까지 적절한 순간마다 원리를 풀어보이는 배려도 좋았다.
독자가 내용을 곱씹고 생각할 여유를 거의 주지 않는 점, 다소 평면적이고 이렇다할 이유 없이 비인간적인 인물들의 시각, 성급한 느낌을 주는 결말 등을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으나 다른 후보작들과 격차가 상당해 당선작으로 꼽았다.
본심 진출작 '영원한 빛'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진행이 매끄럽다. 결말 또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며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만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손질이 부족한 바람에 이야기의 재미를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특히 인간 등장인물과 달리 로봇들의 특성이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 점은 양날의 칼이었고 이 작품의 경우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작가는 개개의 로봇 캐릭터와 로봇 전체의 상징성 가운데 어느 한쪽에 집중하지 못했고, 그 결과 작품의 생동감이 크게 줄어들었다.
본심 진출작 '러브슈프림엔터테인먼트'는 ‘스트레인저’라는 인간의 창조물을 독자의 눈앞에 제시하고 감성을 자극하면서 생각할 기회를 주려 노력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목표가 효과적으로 달성되지 못했다. 독자가 생각할 공간이 주인공의 갈등에 매몰 돼 버렸고 작중 화자의 것을 비롯한 모든 목소리와 시선이 끝내 스트레인저를 피상적인 사물로 대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본심 진출작 '이빅션'은 등장인물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났다. 하지만 작품의 중심 사건인 지구 규모의 재난과 인물의 상황 묘사가 서로 녹아들지 못한 점, 풍자의 수준이 그리 높지 못한 점이 작품 전체의 평가를 떨어뜨렸다.
본심 진출작 '몽이'는 무엇보다 작위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작가가 작품 속에 배치한 모든 요소는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그 인공미를 자연스럽게 감출 때 독자가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 수 있건만 이 작품은 그에 대한 고민이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