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새책] ‘만들어진 진실’…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글루텐이 없는 씨앗 식품인 퀴노아는 가장 건강한 식품 중 하나라고 극찬받았다. 인기가 높아지자 수요도 급증했다. 2006년부터 2013년 사이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퀴노아 가격은 세 배로 급증했는데, 북미와 유럽의 수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지역민들이 전통 식품을 사 먹을 수 없다는 루머가 퍼졌다.
이는 그럴듯한 진실로 둔갑해 자본주의의 공습, 지역민의 고통 같은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 지역민을 살리기 위해 퀴노아 소비를 그만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졌다.
경제학자들이 설문 조사를 해보니 지역민의 생활 수준은 모두 높아졌고, 실제 페루 가구 소비 지출 중 퀴노아에 쓰는 돈은 겨우 0.5% 불과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팩트는 전자도 후자도 모두 ‘진실’이다. 실제 가격은 세 배로 급등했고, 지역민의 생활도 나아졌다. 진실이 아닌 것은 이런 팩트로부터 끌어낸 결론이다.
편집된 진실과 잘못 이해된 숫자들이 제대로 된 맥락 없이 서로 꿰이다 보니 똑같은 팩트로 출발해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는 이상한 형국이 된 셈이다.
노련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온갖 분야에서 편집된 진실이나 숫자, 스토리, 맥락, 도덕성 등을 적극 활용한다.
1차 세계대전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소름 끼치는 전쟁사로 기억되지만, 이 사건으로 영국에선 보통 선거권이 도입됐고 사회적 평등이 향상됐으며 영세민의 식단이 개선됐다.
진실은 99개의 얼굴을 가졌다. 우리 의견에 담긴 진실은 남들이 알려준 내용과 내가 상상하는 내용을 끼워 맞춰 결론짓는 ‘주관화한 팩트’다. 저자는 하나의 사건, 사물을 구성하는 다양한 진실들을 ‘경합하는 진실’로 규정한다.
한마디로 진실에 다가가는 접근법은 다양한데,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취할 것인가가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어떤 경합하는 진실을 선택하느냐가 결국 우리의 사고방식과 선택,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 지식을 폭넓게 접할 수 있다’와 ‘인터넷 때문에 잘못된 정보와 증오의 메시지가 훨씬 더 빨리 확산된다’ 문장 모두 진실이다. 하나 이상의 진실을 두고 경합하는 진실을 찾는 과정은 전적으로 팩트와 맥락, 우리의 사고방식에 달렸다.
독자들의 PICK!
최근 핫 이슈로 떠오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둘러싼 여러 팩트와 관련해서도 '덕분에'와 '때문에'로 볼 여지는 적지 않다. 확인된 팩트 모두 진실일지라도 '경합하는 진실'은 각자 마음 속에 따로 있기 때문.
가장 간단한 실험을 통해 경합하는 진실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다. 심리학자 폴 로진은 완전 새 변기에 사과 주스를 가득 채워 실험 대상자에게 마셔보라고 했다. ‘깨끗하다’는 불변의 팩트가 존재하는데도, 실험자들 모두 거부했다. 변기와 오줌 사이의 연관을 너무나 강하게 인식한 인간의 오래된 생활 습관 탓에 우리의 시선(‘경합하는 진실’)은 고정된다는 것이다.
편집된 진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2010년 폭스콘 직원 100만 명 중 14명이 자살한 사건을 두고 인구 10만 명당 연간 자살률(1.5명)이 중국 평균 자살률(22명)에 훨씬 못 미치는데도 ‘14’라는 눈에 띄는 숫자 때문에 경합하는 진실을 가리는 ‘숫자 현혹’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201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주마 대통령이 정경유착으로 퇴진 양상으로 몰리자, 인종차별 정책으로 여론의 관심을 돌리는 ‘어지럽히기’, 인기 없는 물고기였던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를 생선수입업자가 ‘칠레 농어’(국내에선 메로로 불린다)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화제를 일으키는 ‘인식을 규정하는 이름’ 같은 방식도 흔하다.
저자는 그러나 진실을 편집하는 것이 꼭 나쁜 용도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때론 사람들을 통합하고 용기를 불어넣고 세상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다. 이 같은 결론은 진실을 활용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는 셈이다.
책은 4가지 진실의 유형을 보여준다. 대부분이 진실일 때조차 진실의 ‘전체’를 전달하지 않는 ‘부분적 진실’(역사, 맥락, 통계, 스토리),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투쟁도 불사하는 ‘주관적 진실’(도덕성, 취향, 가치), 자신에 맞는 정의를 이용해 단어의 의미를 바꾸는 ‘인위적 진실’(단어, 이름, 사회적 산물), 설득력 있는 예측을 따르는 ‘밝혀지지 않은 진실’(예측, 신념)이 그것이다.
저자는 “정치, 역사 등 사회 곳곳에서 ‘팩트’라는 이름으로 많은 진실이 편집되고 왜곡되고 있다”며 “권력자가 만들어내는 진실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맥락, 통계, 예측, 믿음이 뒤섞인 팩트 편집의 전략과 역사를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만들어진 진실=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흐름출판 펴냄. 416쪽/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