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

[웰빙에세이]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2020.06.22 09:35

[웰빙에세이] 내 영혼의 문장들 –41 / 차이를 차별하지 말라

용소골
용소골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던 홍세화가 수십 년 프랑스에서 배웠던 ‘똘레랑스’의 정신입니다. 그가 똘레랑스에 대해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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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는 당신이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남을 존중하며, 당신의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념이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다른 사람의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며, 당신과 다른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며 그리고 당신과 다른 생활방식과 문화를 존중하라고 요구합니다. 한마디로 ‘당신 것’이 존중받으려면 ‘남의 것’부터 존중하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당신이 존중받고 싶으면 우선 남을 존중하라! 홍세화가 파리의 거리와 골목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었던 똘레랑스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한 번 더 압축해서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

홍세화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1970년대 유신 독재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시퍼런 서슬에 채여 인생이 고약하게 꼬였던 사람, 어쩌다 낯선 나라의 망명객이 되어 30,40대를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지냈던 사람, 다른 나라는 다 가도 조국은 갈 수 없던 사람, 그라면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다. 그야말로 침묵의 재갈을 씌우고 맹종만을 강요하던 '앵똘레랑스'(불관용) 정권의 가혹한 피해자였기에.

똘레랑스란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겁니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겁니다. 피부색이든, 종교든, 국가든, 민족이든, 이념이든, 신념이든, 문화든 다들 무지개처럼 다채로울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일곱 가지 색깔이 어우러져 눈부신 빛이 되듯 내 마음의 스펙트럼을 넓게 펼치는 겁니다. 당신만의 색깔이 있기에 나만의 색깔도 있다며 마음을 여는 겁니다. 나만 옳다는 독선과 아집을 떨치고 통 크게 사랑하는 겁니다.

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에서는 대화하고 설득합니다. 타협하고 화합합니다. 극단을 파하고 중도에서 연대합니다. 똘레랑스가 메마른 사회에서는 강요하고 억압합니다.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중도를 파하고 극단으로 분열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똘레랑스는 입장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길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공자님 말씀하시길 “내가 바라지 않은 것이라면 남에게도 하지 말라.” 똘레랑스의 정신은 동서고금을 관통합니다. 그럼에도 똘레랑스 하면 프랑스부터 떠올리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똘레랑스의 향기가 깊이 배어들었기 때문이지요.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관용론>을 쓴 게 1763년입니다. 당시 유럽은 종교전쟁의 광풍이 몰아치던 마녀사냥의 시대였습니다. <관용론>은 신교와 구교가 광신적으로 대립하는 틈바구니에서 한 남자가 얼마나 부당하고 억울하고 처참하게 사지를 찢기는 능지처참을 당했는지 낱낱이 고발하는 책입니다. 말하자면 ‘탐사보도’의 원조지요. ‘네가 타인에게 당하고 싶은 않은 일을 너 역시 타인에게 하지 말라’는 똘레랑스의 황금률이 여기에 실려 있습니다. ‘당신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당신이 그 견해를 밝힐 자유만은 옹호한다’는 똘레랑스의 자세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홍세화 또한 무자비한 색깔론의 먹잇감이 됐었지요. 그가 연루됐던 ‘남민전 사건’으로 한 명이 옥사하고, 한 명이 사형 당하고, 한 명이 보석 후 병사했습니다. 이외에도 수십 명이 무기수 등으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대규모 간첩사건으로 기획하고 조작한 남민전 사건의 피해자들은 20여년이 더 지난 2006년이 되어서야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간발의 차로 화를 면했던 홍세화가 프랑스에서 망명 허가를 받던 날,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 여행할 수 있다’고 적힌 여권을 받던 날, 그는 눈물 흘립니다. 흐느낍니다. 흐르는 쎄느 강물을 초점 없이 바라보면서 그는 외칩니다. “나는 배반하지 않았어. 내가 배반한 게 아니야. 네가 배반했어. 배반한 건 바로 너란 말이야!”

그래, 그는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조국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삶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조국이, 삶이 그를 배반해도 다 끌어안고 다 삭이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똘레랑스를 얘기합니다. 묵직한 울림으로 외칩니다.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 나에게 이런 똘레랑스의 자세가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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