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나는 알린 크로체에게 감명을 줄 기회를 영영 잃었다.
지난 12월 90세로 타계한 크로체는 미국 무용의 전성기에 무용 평론계의 거인이었다. 나는 글쓰기 경력을 무용 평론가로 시작했고, 그것만이 내가 오랫동안 작가로서 가졌던 꿈이었다.
내가 처음 발표한 글 60여 편은 모두 무용 리뷰였고, 전적으로 크로체 한 사람만을 독자로 상정하고 썼다. 내가 보는 무용의 세계에서 그는 북극성이자 여왕이었고 무용은 그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내가 내 인생에서 그의 인정을 받는 것만큼—청춘의 열정과 견습 작가의 칭찬에 대한 갈망으로—강렬히 원했던 것은 몇 되지 않는다.
나는 결코 그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사실 내가 쓴 글을 그가 단 한 글자라도 봤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나를 그 시절로 되돌려놓았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피렌체 회화나 비엔나 음악에 견줄 만한 업적을 미국이 무용에서 이룬, 미국 무용의 황금기가 저물어가는 시기였다. 이제는 이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미국 무용의 전성기는 필연적으로 미국 무용 평론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이전 세대의 대표적 평론가였던 에드윈 덴비는 예술이 우리의 쾌락 경험을 연장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비평은 우리의 예술 경험을 연장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계속)
PADO 웹사이트(https://www.pado.kr)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