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여기에 커다란 대문이 있었는데 다 헐어버리고 없어"
길을 안내해 준 동네 주민의 증언이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10·26사건의 장본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아들이 살고 있다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의 한 주택.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 찾은 그곳은 나는 새도 떨어트렸다는 김 전 부장의 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작은 대문 앞에 집에서 내놓은 듯 한 폐지, 가구, 식기 등은 마치 얼마 전 이사를 간 집마냥 보였다. 그러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김 전 부장과 내연녀 장모씨(2008년 사망) 사이의 아들 김모씨(39)가 여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문을 두드리자 마른체형의 중년 남성이 집안에서 나왔다.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에서 김 부장의 생김새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김○○씨는 지금 해외에 있고 자신은 그냥 집 관리자"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동행한 주민의 증언으로는 그가 바로 김재규 전 부장의 아들이었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김씨는 어머니 장씨가 입양한 남동생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살고 있는 집 풍경이 말해주듯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씨가 태어났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는 주민은 "어려서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어렵게 사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며 "전기나 수도가 끊긴지도 오래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외할머니가 다니던 집 옆 S교회에서 김씨 형제의 생활을 돕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주민은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은 인근 가게를 봐주며 생활을 한다"고도 덧붙였다.
김씨는 한 때 벨트 등 액세서리를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그가 운영하던 D업체의 현판도 버려져 있었다. 또 사업 당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서류철, 거래처의 명함 등도 박스 한 켠에 쌓여있었다. 김씨가 운영하던 D업체는 1993년 12월 폐업했다. 한 주민은 "사업에 실패한 후 생활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며 "요즘은 일하러 나가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의 어머니 장모씨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주민은 "한 때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김 전 부장과의 관계 때문인지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라며 장씨를 추억했다. "한 번은 장씨에게 '집 앞 유실수를 관리해야하지 않겠냐'고 말하자 '그럼 사람을 시켜서 하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로 장씨의 성품을 증명했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해 12월 뇌졸중으로 숨졌다. "매일 아침 교회 앞에서 운동을 하던 장씨가 안 보인다 싶더니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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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전 부장은 1980년 5월 국가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수괴 미수 혐의가 확정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김 전 부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김모씨와 딸이 있으며, 이 딸은 미국으로 이민간 것으로 알려졌다. 내연녀였던 고 장씨와 아들 김모씨는 유족들과 왕래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