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증책임을 납세자에게 전환하려면 납세자의 무기가 국세청과 대등한지를 살펴봐야 한다. 아직은 신중해야 한다."(안경봉 국민대 법대 교수)
"예전에는 국세청의 이미지가 강해서 납세자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하기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다르다. 납세자도 약하지 않다."(국세청 고위 관계자)
국세청이 용어조차 낯선 '납세자 입증책임제'를 향후 10년 국세행정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들고 나오면서 찬반논란이 분분하다.
국내 세법은 과세 입증 책임 주체를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그간의 판례와 학설은 과세관청, 즉 국세청이 조세소송의 입증책임을 져야 한다고 봐 왔다.
최근 역외탈세 혐의로 4000억 원대 '세금폭탄'을 맞은 시도상선과 국세청이 본격적으로 조세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이 경우 국세청이 과세 입증책임을 지게 되는 식이다. 세금을 부과한 곳이 타당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국세청은 이 같은 과세 증명책임을 납세자에게도 배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시도상선의 사례처럼 전 세계를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는 역외탈세의 경우, 관련 서류를 은닉하기 쉽고, 추후 숨겨둔 서류를 가지고 국세청에 새롭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소송 남발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빨간불'이 켜진 국가 재정도 국세청을 더 조급하게 하고 있다. 균형재정을 위해 안정적인 세원 확보가 필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탓이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23일 납세자 입증책임제가 논의된 '공정세정 포럼'에 참석, "상반기 세수실적은 호조를 보였지만 글로벌 재정위기 여파로 중장기 세입은 악화될 우려가 크다"며 "현행 과세행정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근본적인 정책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탈세한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에게 응분의 세금을 내게 해 공평과세를 이루고, 더불어 재정안정성까지 확보하겠다는 취지는 그럴 듯하다.
하지만 "국세청이 충분한 과세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역외탈세를 핑계로 입증책임을 납세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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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도 약하지 않다'는 말이 진정성 있게 들리려면 납세자에 대한 배려와 권리 존중이 선행돼야 한다. 납세자 입증책임제 도입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