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손으로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넣어 직접 가족들에게 쐬게 했다는 것이 가장 괴롭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모임을 이끌고 있는 강찬호씨는 9일 환경보건시민센터의 피해사례 발표장에서 울먹였다. 강씨는 살균제에 들어 있는 염소 때문에 배우자를 잃었다. 아내를 잃었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딸도 살균제 때문에 이름도 생소한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간질성 폐질환은 폐 조직에 손상이 생기며 폐가 딱딱하게 굳어 결국 사망에 이르는 질환이다. 많은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희귀질환이란 명목으로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았다. 폐질환 치료비로만 수천만 원이 들었다. 비용은 고스란히 본인 몫이었다. 독성제품을 만든 기업이나 제품을 허가해준 정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8월 말 '원인미상 폐손상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발병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의심된다'고 밝힌 지 두 달 반이 지났다. 정부는 아직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판매금지나 강제 회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달 초 사용중단 조치만 내린 상태다. 정확한 인과관계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환경단체와 각계 전문가, 피해자모임단체에서 폐질환 의심 제품과 피해사례를 공개한 마당에 정부 대응은 너무 늦었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전체 시장 점유율의 절반 넘게 차지하는 제품에서 사망자 등 피해사례가 가장 많이 발견됐다. 대형마트 자체제작(PB) 상품이나 생활용품매장에서 파는 살균제에서도 피해사례가 속출했다.
정부는 국민 앞에서 대책반을 구성해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은 "가습기 살균제 대책반이 생긴 뒤 회의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피해자는 계속 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은 현재까지 28명이 신고됐다. 게다가 이중 22명이 36개월 미만의 유아다.
정부와 기업을 신뢰하고 살균제를 샀던 국민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하는 의무를 저버린 셈이다. 정부가 정확한 원인 조사한다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디선가 또 다른 누군가는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