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요금 인상안 의결···지경부·재정부 '다른 셈법'에 인가 난망
생산원가를 밑도는 전기요금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에 시달리던한국전력(49,150원 ▲850 +1.76%)이 마침내 '칼'을 뽑아들었다.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10%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하고 정부 측에 인가를 신청한 것.
일단 관계당국인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는 절차에 따라 공식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상폭과 시기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한전의 원안이 그대로 인가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한전의 요금인상 '쿠데타'가 성공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진 한전=21일 정부와 한전 등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어 10%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하고 지식경제부에 인가를 요청했다. 한전이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요금 인상안을 의결한 것은 김쌍수 전 사장이 한전 소액 주주들보부터 2조8000억원대의 소송을 당한 것과 관계가 깊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으로 매년 수조 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요금 인상이 또 지연되면 현 이사들도 주주들로부터 손실의 책임을 묻는 추가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한전의 영업적자는 약 1조8000억원, 누적부채는 33조4000억원에 달한다. 한전은 올 상반기에도 1조6362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 8월 전기요금을 4.9% 인상했지만 원가보상률은 90%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도 100원 어치의 전기를 팔면 10원 적자를 보는 셈이다.
실제 요금 인상안을 의결한 17일 이사회에는 외부인사로 구성된 사외이사는 8명 중 5명이, 경영진으로 구성된 사내이사는 7명 전원이 참석했다. 이처럼 사내 이사가 더 많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안건이 의결됐다는 점은 한전 내부적으로 요금 인상의 당위성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짐작케 한다.
한전 관계자는 "김 전 사장이 소송을 당한 이후 원가를 밑도는 전기요금의 현실화 과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내부에)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경부 "연내 인상 OK, 인상폭은 글쎄···"=한전 이사회가 요금 인상안을 의결해 지경부에 인가를 신청하면서 '공'은 정부 측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지경부와 기획재정부 등 전기요금 당국은 인상폭과 시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기사업법 16조는 전기판매사업자(한전)이 전기요금 기타 공급조건에 관한 약관을 변경하고자할 때 주무부처인 지경부의 인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경부 장관이 전기요금 및 소비자보호 전문위원회의와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친 후에 요금인상안을 인가해주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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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부는 우선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하고 있다. 전력 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전력수급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수요 억제, 이를 위한 가장 실효적 대책이 요금인상이기 때문이다.
지경부는 올 겨울에 전년 동기 대비 전력 수요 증가율이 공급 증가율을 두 배 이상 앞지르면서 예비전력이 적정 기준(400만㎾)보다 크게 낮은 평균 153만㎾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강추위가 예상되는 1월 2~3주에는 53만㎾까지 떨어져 위험한 고비를 맞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칫 '9·15 대정전' 사태가 제발할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비록 지경부가 전력 사용 피크 시간대에 대형 건물과 산업체의 전력 소비를 10% 줄이도록 의무화하고 난방온도 제한 대상 건물을 4만7000여곳으로 늘리는 등 전력 수요 억제 대책을 내놓았지만, 요금 현실화가 선행되지 않고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만 10%대의 인상폭은 너무 높다는 반응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겨울 전력 피크에 대비해 연내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한다"면서도 "인상폭에 대해서는 적정 수준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정부 "물가 높은데 왜 하필 지금···"=정작 문제는 물가당국인 재정부와의 협의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4조가 주무장관이 공공요금을 변경할 경우 미리 재정부장관과 협의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경부의 단독 인가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재정부는 인상폭과 시기 모두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지만 '고물가'로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인상폭을 최소화하고 시기도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공산품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등 물가 전반에 파급효과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재정부 관계자는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지만 높은 물가로 서민 시름이 깊어지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수급안정과 물가안정을 놓고 '딜레마'에 빠진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