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 위의 공무원들-세종/서울 '기형 행정' 이대론 안된다⑤-1]스마트워크센터, 행정분리 보완 역부족..차관보 "슬리퍼 좀 신었으면..."

막바지 종합국정감사가 진행된 지난 1일 오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10층 구석 장·차관 스마트워크센터의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 아직 입주가 안 된 오피스텔 처럼 삭막한 풍경이 펼쳐진다. 각진 사무용 책상과 반쯤 돌아가 있는 의자 옆에는 텅빈 옷장만 덩그러니. 사람은 간데없고 적막이 감돌았다.
컴컴한 광화문청사 복도를 따라 가장 안쪽으로 3개의 집무실과 1개의 회의실로 구성된 장차관용 스마트워크센터가 들어섰다. 창가에 붙은 방은 광화문이 내려다보여 전망이 제법 그럴듯했다. 하지만 안쪽 두 곳은 장관실 문패가 무색할 정도로 햇빛 한 줄 들지 않는 말 그대로 골방이다. "장차관 방문이 겹치는 날에는 은근히 창가자리 선점경쟁이 있다"는 것이 관리담당 직원의 설명이다.
복도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실국장급용 1~2 스마트센터가 각각 40~50여석 규모로 조성돼 있었다. 국감 탓인지 이날 오후엔 거의 텅 비었다. 직원은 "평소에도 고위공무원이 한 사람 들어오면 수행직원들이 우르르 자리를 채웠다가 또 우르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공무원들이 찾지 않을 때는 불을 끄고 비밀번호를 채운 자물쇠로 잠가놓는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스마트워크센터가 전국에 14곳. 당초엔 공무원들의 유연근로를 위해 만들었다. 꼭 사무실로 나오지 않아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밖에서도 정부망에 접속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세종시대 개막과 동시에 스마트워크센터는 서울·세종을 오가는 '메뚜기 공무원'들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됐다. 이전부처가 대부분 서울사무소를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재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엔 사실상 이곳 뿐이다.
오전에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국회로 간다는 기획재정부 차관보급 인사를 만났다. "요즘은 슬리퍼 신고 일하는게 소원"이란다. 세종에 개인 사무실과 비서를 두고도 주 사흘은 서울에서 이 자리 저 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처지에 대한 농담섞인 하소연이다. 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짐을 챙겨 청사를 나섰다. 일어난 자리엔 서류 한 장 찾아볼 수 없었다. 자기 자리가 아니니 당연하다. 슬리퍼를 신고 싶으면 신발주머니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차관보는 정부정책을 장차관 결재만을 남겨둔 단계까지 책임지는 사실상의 완성자다. 직급 자체가 국가자산이다. 그런 고위공무원이 국가기밀 가득한 가방을 들고 서울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다른 고위공무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산하기관에 빈 방이라도 하나 빼 쓸 수 있는 장관급이 아니면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펴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주변에 누가 보든 말든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일단 급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층 아래 일반공무원용 스마트워크센터. 텅 빈 위층과는 달리 같은 시간에도 메뚜기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국감업무 지원을 위해 서울로 온 세종 공무원들이다. 티는 안내지만 금요일 오후 어영부영 서울회의를 잡아 일찌감치 올라온 주말부부 공무원들도 적잖을 터였다. 면식이 있는 한 공무원은 "(스마트워크센터가) 보통 주중엔 한가하고 금요일엔 유난히 붐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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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전, 국회 본관 2층 스마트워크센터는 사정이 딴판이다. 종합국감을 준비하느라 상경한 세종 공무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분하는 이곳은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열자마자 만석이 됐다. 상급자에게 전달할 서류를 출력해 나는 듯 계단을 달리는 공무원의 얼굴에 피로감이 가득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중앙부처 과장. 가족과 함께 세종에 산다. 그는 엊그제 밤 광화문청사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직원들과 함께 새벽 세시 반까지 업무를 봤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모텔에서 업무를 보는데 한계가 있다. 국회 스마트워크센터는 저녁이면 문을 닫아 광화문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중앙부처 관계자는 "국감 업무를 배분할 때 서울에 집이 있는 직원들은 서울 팀으로, 세종에 집이 있는 공무원은 세종팀으로 나누긴 하는데 각자 담당업무 특성이 있다 보니 모두 사정을 맞춰 임무를 배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광화문청사와 국회서 만난 정부공무원들이 공통으로 토로한 것은 '불편이나 피로'가 아니라 '비효율'이었다. 국감 현장을 지키던 한 기재부 국장은 국회와 정부 간 물리적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말한다.
"국회와 정부 사이에 국민이 있다. 국토 균형발전을 제대로 이루려면, 세종시 체제가 완전히 정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도기 동안이라도 행정운영의 비효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시급히 갖추는 게 중요하다."
언제까지 정부를 이렇게 길바닥에 둘 것이냐는 울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