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legal tender)는 국가가 통용을 강제할 뿐이지 하등의 가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그 가치가 정해진다. 중앙은행이 투명한 자세로 시장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시장을 설득해야 하는 까닭이다. 시장이 중앙은행을 신뢰해야 통화금융 정책의 효용성이 높아지고 화폐가치가 안정되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화폐의 수요와 공급을 유도하여 결과적으로 시장금리를 조절하는 기준금리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은행의 시각과 시장의 의지가 엇갈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현재 연2.5%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은 2008년 이후 각각 0.05%와 0.25%를, 유럽은 0.5%로 유지하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이유로 원달러 환율이 조그만 하락했도(원화가치 상승) 즉각 개입하려는 시늉을 하면서, 경쟁국과 금리차이가 이리 커도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경제가 이미 저성장, 저물가 기조에 들어섰다는 사실은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가늠할 수 있다. 돈이 돌지 않아 화폐유통속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이렇게 높아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2013년 4월초 금융통화위원회가 시장의 기대와 달리 기준금리를 동결한 까닭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낮추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 범위 내에서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하지만 예상과 반대로 그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IMF 구제금융 사태로 소비수요가 절벽이었던‘09년 이래, 최저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유가하락이나 원화강세 등 해외 공급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 부동산시장 장기침체, 중산층 붕괴에 따른 소비수요 격감으로 물가 안정내지 하락 조짐은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는 시장의 설명이 보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시장에서는 은연중 디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주식 채권 등 포트폴리오 투자 자금 유출입이 과다하여 금융시장 불안은 물론이고 특히 외국인 투기자들에게 매매차익과 환차익을 허용하여 국부가 크게 유출되는 폐해가 일어났다. 실제로 IMF 사태 이후인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약 3200억불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도 대외 지불능력은 안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국제투자대조표를 보면 순 국제투자 잔액은 2000년 말 △350억 달러에서 2013년 9월 현재 △425억 달러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외화준비금, 투자지분을 포함하여 주고받을 대외채무와 대외채권을 모두 정리하면 그만큼 외화가 모자란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앞으로 남고 뒤로는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여기에는 금리· 환율· 주가 같은 금융가격지표가 효율적으로 연계하여 움직이지 못하거나, 글로벌 경제권에서 다른 나라 시장과 동조하여 변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여 틈새가 크게 벌어지면 그에 따른 차익거래 기회를 제공하게 마련이다. 금융시장 효율성이 국민경제에 절대 절명의 과제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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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 저물가 기조에 돌입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경쟁국에 비하여 유달리 높은 까닭도 모르고 있다. 시장이 기준금리의 결정과 그 수준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중앙은행은 그 당위성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막연히 물가가 불안하다든지 성장세가 회복되고 있다는 말은 시장이 얼른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 속의 한국경제 상황에 걸 맞는 기준금리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