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명의 행위자 X, Y가 간단한 게임을 한다. 일정 액수의 돈이 주어지면 X는 모두 자신이 가질 수도 있고 일부를 Y에게 줄 수도 있는데, 이때 Y에게 제공되는 금액은 일정 배수로 불어난다. 예를 들어 1만원을 주면 Y에게는 2만원이 되어 전달되는 식이다. 불어난 돈을 받은 Y는 (원한다면) 다시 그중 일부를 X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 X는 과연 얼마나 Y에게 주려고 할까? Y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많은 액수를 줄수록 이익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한 푼도 주지 않는 것이 이익이다. Y 또한 불어난 이익을 X와 나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모두 갖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흥미롭게도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임에도 사람들은 상당한 액수를 상대방에게 제공했고 또 돌려주기까지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X의 행위는 (미래이익에 대한) 일종의 '투자'로 볼 수도 있지만 Y가 돈을 돌려주는 행위는 '상호간 신뢰'를 전제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위의 경우가 '신뢰게임'(Trust Game)으로 불리는 이유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직원에게 일정한 임금을 제공하고 직원이 그에 상응하는 노동을 대가로 제공하는 것은 신뢰게임의 한 사례가 된다. 상호신뢰가 없다면 기업은 최소생계비만 지급하고 노동자는 최소노동만 제공하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일 것이나 현실에서는 높은 액수의 임금과 기준을 초과한 노동이 교환된다. 경제학자 애컬로프(G. Akerlof)는 이러한 노동시장의 특성을 '선물교환'(gift exchange)으로 간주했다. 선물은 그에 상응하거나 더 큰 호의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연인에게 명품백을 선물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을 전제한다. 왜 이런 상황이 노동시장에서 벌어질까? 이유는 물건이나 돈이 아닌 사람의 능력이나 노동을 교환할 때는 대상의 가치를 명확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나 조직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일에 몰두한다. 다양한 연수프로그램과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조직에 대한 애착심을 높이는 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직원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고 있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 병행론'이다. 당근만 주면 나태해질 테고, 채찍질만 해대면 의욕을 잃어버릴 테니 상황에 따라 둘을 함께 활용하는 것이다.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모자랄 때 처벌이 돌아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도 순수한 의미의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조건적 처벌과 짝을 이루는 조건적 보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반응할까? 학자들이 이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채찍질은 당근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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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채찍을 맞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근은 더 이상 순수한 선물이 아닌 것이다. 상호 신뢰에 기반한 호혜관계는 처벌조건의 도입으로 무너진다. 사람들은 이제 기업의 행동에 호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적으로' 반응한다. 즉 당근을 얻을 수 있는 소수는 초과 이익을 누리지만 그로부터 거리가 먼 다수는 '처벌을 피하는' 수준까지만 노력을 하게 된다. 구성원이 조건적 반응에 고착되는 것은 '능동성'과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나 분야에는 특히 치명적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다수의 구성원이 조건적으로 반응하는 조직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구글(Google)이나 SAS 같은 해외 기업의 사례를 본받아 국내에도 직원 복지에 무게를 두는 기업이 점차 생겨나는 추세인데, 정부기관이나 대학과 같은 조직도 이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 선물은 물질적 보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율출퇴근제나 출산휴가제와 같은 제도적 변화도 조직과 구성원 간에 더 나은 호혜적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관계의 구축이다.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을 처벌을 통한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도록 하는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조직의 생산성과 활력은 사라진다. 창조경제가 화두가 된 시대에 사람과 신뢰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