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내 마음의 창이 된 30년 전 참스승

[MT시평]내 마음의 창이 된 30년 전 참스승

진양곤 기자
2014.07.25 07:12

"이게 얼마 만이냐? 30년 만이네. 근데 쟤도 너희반이었냐?"

"야! 우리 반 담임이잖냐."

세월이 만든 해프닝과 함께 나의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기념행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자그마치 30년. 많은 것을 포함한다. 국기 하강식이 있었고 총검술도 배웠다. 두발 자유화를 처음 경험했고, 사복을 입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첫 세대였다. 털털거리는 여름 선풍기와 매캐한 겨울 조개탄으로 계절을 이겨내며 우정을 다진 세대. 산업화, 정보화와 민주화를 관통한 세대.

간달프는 호빗에게 여정을 떠나라며 말한다. "물론 힘이 들 거다. 하지만 돌아오면 이야깃거리가 많아질 것이다." 우리는 호빗처럼 여정을 떠났고, 이야깃거리를 들고 30년 만에 다시 모인 것이다.

한 친구가 말한다. "난 우리 담임 보러 왔어. 내가 사고쳐서 경찰서 끌려갔을 때 담임이 그랬거든. "네가 기어이 대학 가는 것을 봐야겠다"고. 대학 합격하니까 "난 네가 해낼 줄 알았다"며 정말 좋아하셨지." 그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사고뭉치였던 그 친구가 어엿한 회사의 사장이 된 건 참스승이 내민 따뜻한 손 덕분이리라.

이처럼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좋은 스승 한 분을 만난다면 그야말로 축복이며 행운일진대, 그런 행운이 내게도 있었으니, 국어를 가르치신 오삼표 선생님이다. 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가끔 생뚱맞은 화두를 던지셨다. 이를테면 어른들이 유원지나 관광버스 안에서 술 마시고 춤추는 데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었다. 봄맞이 대청소 운동이나 쥐잡기 운동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지침이 국민의 일상까지 파고들던 그때, 유원지 술판이나 관광버스 안 춤판이 낯설지 않던 그때의 정부지침은 행락질서 바로잡기였다.

"문화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죠."

주입된 윤리의식으로 무장한 우리의 대답에 오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이놈들아. 자식만 바라보고 뼈빠지게 일하다가 농한기 때 겨우 허리 한 번 펴고 노래 부르는 것,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 하느라 잃어버린 인생을 막걸리 한 잔으로 달래는 것, 그게 바로 너희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춤판이고 술판이야. 너희 부모들은 노는 방법조차 몰라서 그러는거야. 뭐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없이 함부로 얘기하면 안되는 거야. 적어도 너희들은 그러면 안되는 거야"라고. '쿵~.' 내 마음 속에 죽비처럼 내려앉은 말씀.

도덕과 규범의 기준을 국가가 정하고 시민은 그냥 따라야 한 훈육의 시대. 국가의 이익에 호소하기 위해 가장 고귀한 자유인 지적 자유를 제한한 그 시대에, 나는 한 분의 스승이 있어 다양하게 '사유하는' 호사를 누린 것이다. 진화 발전은 단순한 지식의 전수를 넘어 사유와 경험이 확장될 때 가능해진다는 나의 믿음이 맞다면 오 선생님의 뜬금없는 질문들로 인해 나와 친구들은 쑥쑥 진화 발전한 셈이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들 한다. 그런 와중에 전교조가 법외노조 판결을 받고 투쟁의지를 천명함으로써 교육계가 다시 시끄럽다. '참교육' 깃발 아래 '자유롭게 굽이쳐야 할 시냇물을 밋밋한 도랑으로 만드는 교육'을 극복하려 한 사람들. '순응'과 '주입'으로 대표되던 가치체계를 '비판'과 '사유'의 가치체계로 바꾸려 노력한 사람들. 그게 필자가 기억하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나는 국민정서와 배치되는 일부 행동만으로 전교조 선생님 모두를 폄훼하거나 불순한 단체로 규정하는 어떠한 시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밤 별을 보려면 창문을 열어야 한다. 방 안으로 나방이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가 나방을 들이기 위해 창문을 연 건 아니지 않나.

하지만 전교조 또한 초심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그들 또한 교육노동자며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기본적 권익을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제자들의 말랑말랑한 인생에 조용히, 그리고 견고하게 스며든다는 점이다. 오 선생님의 화두가 필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그 어떤 투쟁의 길에도 제자들의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는 '스승의 길'을 먼저 선택해주기 바란다.

우리가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듯, 학생들이 보내는 시기는 다시 살아볼 수 없는 절대적이며 결정적인 시기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초심을 돌아보고 본질에 충실할 때만이 참교육의 깃발은 더 힘차게 날릴 것이며, 훈육과 폭력의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 부모들의 지지도 강고해질 것임을 그 분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30주년 기념식의 여흥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사회학과 교수가 된 친구가 맥주를 따르며 한 마디 한다. "사람노릇하면서 살기 힘든 세상이 돼버렸어야…."

오삼표 선생님. 사람노릇 제대로 못한 이 제자가 30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을 이제야 합니다. 당신은 질곡의 시대, 흔치 않은 스승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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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희 기자

안녕하세요. 편집국 천상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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