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美 "핵폐기물 저장소 꽉 찼다고? 늘리면 되지 않나"

속보 [르포]美 "핵폐기물 저장소 꽉 찼다고? 늘리면 되지 않나"

미국(앨버커키·워싱턴)=우경희 기자
2014.08.27 08:03

美 노쓰아나 원전 가보니, 사용후핵연료 저장 자유롭게 확대

영구처분장은 갈등…유커마운틴 프로젝트 중단

국내 임시저장 10년내 포화, 주민불신·정부소극성에 논의 시작도 못해

캐니스커 보관소/사진제공=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캐니스커 보관소/사진제공=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광활한 미국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는 옆집이나 마찬가지다. 행정수도 워싱턴 D.C.에서 버스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노쓰아나(North Anna) 원자력발전소는 그런 점에서 워싱턴, 뉴욕 등 동부 핵심도시 코 앞에 자리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원자로 냉각수를 겸한 인공호수를 초입에 파고 넓은 녹지 위에 지은 원전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취재진 앞에서 풀을 뜯는 사슴떼는 평온한 분위기의 정점을 찍었다.

원전 핵심 시설인 리액터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거대한 누에고치처럼 생긴 '캐니스커' 무리다. 높이 5m에 한 개의 무게가 115톤에 달하는 캐니스커 군은 마치 설치미술 작품처럼 나란히 서 파란 숲과 대조를 이뤘다. 캐니스커는 개당 32개의 사용후핵연료 연료봉을 품고 있다. 원전 바로 옆 들판에서 찬 공기를 마주하며 품 안의 폐 연료봉을 서서히 식히고 있었다.

노쓰아나 원전은 총 49개의 캐니스터를 보관하고 있다. 27개가 첫 번째 보관소 부지에, 나머지 22개는 두 번째 보관소 부지에 있다. 5개가 더 들어서면 두 번째 보관소도 가득 찬다. 사용후핵연료를 원전부지에 저장하고 있는 것은 국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점은 그 다음이다. 노쓰아나 측 페이지 켐프(Page Kemp) 라이센싱 어드바이저는 포화 후 계획을 묻는 취재진에 '당연한걸 묻는다'는 듯 "옆에 세 번째 보관소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어찌 보면 상식이지만 국내서는 당연하지 않은 문제다. 오히려 이 부분이 쟁점이다. 원전 내 보관소를 확충하지도, 별도로 중간저장시설을 짓지도 못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경주에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지었지만 말 그대로 중저준위, 즉 실험복 등 낮은 수준으로 피폭된 폐기물을 보관하는데 그친다. 사용후핵연료는 보관할 수 없다. 원전 내 보관소가 꽉 차면 폐연료봉은 갈 곳이 없다는 의미다.

페이지 켐프 노쓰아나원전 라이센싱 어드바이저/사진제공=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페이지 켐프 노쓰아나원전 라이센싱 어드바이저/사진제공=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일단 중간저장소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저장소 신설은 핵시설에 대한 주민수용성(이해 정도)이 높은 미국에서조차 쉬운 문제가 아니다. 최종저장시설로 암반 굴착까지 마쳤던 유카마운틴(Yucca Mountain) 프로젝트가 정치적 이유와 네바다주 관광산업 악영향을 우려한 주민 반대로 중단됐을 정도다. 국내 여건은 더 어렵다. 저장소를 받아들일 지자체가 없다. 폐기물을 머리에 이고 있어야 할 판이다.

노쓰아나원전 관계자들은 캐니스커를 이용한 사용후핵연료의 건식저장이 위험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켐프 어드바이저는 "3년 전 리히터 5.8규모 지진이 발생해 20개 이상의 캐니스커가 4인치 가량 움직였다"며 "이후 전문가들을 불러 안전검사를 실시했고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의 우려도 폐기물보다는 원전 가동 자체의 안전을 향한다. 그는 "주민들은 원자로 자체에 불안감을 느낄지언정 사용후핵연료 저장에 대해서는 큰 걱정이 없다"며 "이견이 있는 주민들과는 연 1회 모임을 갖고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6년이면 고리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른다. 이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저장소가 가득 찰 것으로 예상된다. 조밀화 등으로 시기를 최대한 늦춘다 해도 10년 후면 더 이상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없다. 하지만 아직 중간저장시설 설치는 커녕 원전 내 저장소 확대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정부를 불신하고, 정부는 주민 반대에 따른 역풍을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심층저장해야 한다는 것에는 국내외의 인식이 대체로 일치한다. 텍사스주 앨버커키에 위치한 샌디아 국립연구소에서는 심층저장 기술은 물론 사용후핵연료 운반기술 등 관련 연구가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폴 슈메이커 샌디아연구소 윕(WIPP·Waste Isolation Pilot Plant) 본부장은 "모든 사용후핵연료는 인간 생활권에서 벗어나 심지층에 묻는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폴 슈메이커 윕 본부장이 취재진에게 프리젠테이션하고 있다./사진제공=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폴 슈메이커 윕 본부장이 취재진에게 프리젠테이션하고 있다./사진제공=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국내서는 심층 최종처리장 논의는 언감생심이다. 당장 원전부지 내 저장소를 더 확보하고 중간저장소를 설치하는 논의라도 개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그러나 핵 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논의 자체를 더디게 하고 있다. 국민들 몰래 사용후핵연료 저장소를 지으려 했던 이른바 안면도 사태(1990년)를 시작으로 유혈사태까지 벌어진 굴업도(1995년), 부안(2003년) 부지선정 갈등이 이어지며 정부의 원전정책은 국민들의 신뢰를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존 헤르체그(John Herczeg) DOE(미국에너지부) 차관보는 "각 원전에 임시 저장한 사용후핵연료의 경우 보안유지 등에 세금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군데 모아서 저장하는 것이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영구처분시설의 경우에는 주민들과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등 협상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통해 합리적인 관리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위원회는 연말까지 의견을 수렴한 후 관리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노쓰아나원전 전경/사진제공=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노쓰아나원전 전경/사진제공=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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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희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 the300 국회팀장 우경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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