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부터 IMF까지…'YS노믹스'의 엇갈린 시선

금융실명제부터 IMF까지…'YS노믹스'의 엇갈린 시선

세종=정현수 기자
2015.11.22 11:09

금융실명제는 YS의 대표적인 업적…IMF 구제금융으로 마지막 단추 못 꿰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서거했다. 사진은 빈소에 마련된 영정. /사진=뉴스1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서거했다. 사진은 빈소에 마련된 영정. /사진=뉴스1

"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76조1항에 의거해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합니다"

1993년 8월12일 오전 7시 긴급 국무회의 직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표한 연설문의 첫 문구다. 김 전 대통령은 발표문에서 "이 시각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뤄진다"며 금융실명제 도입을 전격 발표했다.

당시 발표는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담당 공무원 10여명이 과천 시내 한 아파트에서 합숙작업을 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만큼 전격적으로 발표가 이뤄졌다. 발표 직후 대만민국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획기적인 변화였다.

부동산 실명제도 김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경제정책이다. 1995년의 일이다. 토지의 종합과세를 위해 도입된 부동산 실명제는 부동산 탈세와 투기 방지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당시 정부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가 '선진국'이었다. "우리도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와 함께 OECD 가입이 이뤄졌다. 국민들의 자부심도 높았다.

하지만 이후 우리 경제는 본격적인 개방의 길에 들어섰고, 외부의 역풍을 받아들이기엔 다소 이른 감이 있었다. 특히 1997년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그룹, 기아자동차 등 우리 경제를 떠받치던 기업들의 부도가 발생했다.

위태로워진 우리 경제는 외환보유액까지 바닥 나며 결국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여러 업적에도 불구하고 'YS 노믹스'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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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 정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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