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보험 연간 인수실적 25% 중소·중견기업으로 채워야… "시장개방 부작용 최소화"

정부가 단기 수출보험 시장에 진출한 민간 손해보험사에게 최대 25%의 중소·중견기업 의무인수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사고위험이 낮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곶감빼먹기’식 영업에 따른 수출 중소·중견기업 피해를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9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단기 수출보험 민간 개방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에 진출한) 보험사에 중소· 중견기업 인수율 하한선을 부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부처간 의견 합의를 이룬 상황"이라며 "(의무인수율은) 시장 상황을 고려해 연간 단기 수출보험 인수실적의 20~25% 사이에서 탄력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수출보험은 수출거래를 할 때 상대방의 파산 등 예상치 못한 위험 때문에 수출기업 또는 수출금융을 제공한 금융기관의 대금회수가 불가능할 때 손해를 보상해주는 공적 신용제도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보험공사가 독점해 왔는데 정부가 2013년 8월 단기(결제기간 2년 이내)에 한해 민간에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현재 KB손해보험, AIG손해보험, 현대해상, 동부화재 4개사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영업허가를 받았고 이 중 AIG손보는 상품을 이미 출시했다.
정부가 민간 보험사에 중소·중견기업 의무인수율을 적용하는 이유는 공적 제도인 수출보험의 취지와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중소 단기수출보험 손해율은 155%, 중견기업은 88.5% 대기업은 53.2% 수준이이다. 중소기업에게는 보험료를 1만원 걷을 때마다 5500원씩 손해를 보는 적자 구조다. 반면 대기업의 경우 보험료로 1만원을 받을 때마다 4700원의 이익이 난다.
이 때문에 민간 보험사는 수익성을 우선하는 사기업 속성상 대기업 중심으로 영업할 가능성이 크다. 민간보험사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에 같은 보험료를 받는 무보와 달리 가격경쟁이 가능하다.
이 경우 대기업은 민간 보험사로 빠져나가고 중소·중견기업만 무보에 남게 돼 ‘수익성 악화→무역보험기금 손실→중소·중견기업 보험료 인상 및 지원 축소’의 악순환이 예상된다. 더구나 무역보험기금 손실은 국민 세금으로 보전하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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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무보의 기업 규모별 단기수출보험 대기업 보험료 수익의 상당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의 보험금 손실을 메꾸는데 사용돼 25억원의 적자를 냈다.
노영기 중앙대 경제학 교수는 "상품구조가 단순한 단기수출보험은 가격경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민간 보험사로) 이탈할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수출 지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중견·중소기업 의무인수율과 같은) 정책수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보완책을 적용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여전히 중소·중견기업을 보호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악조건 속에서도 중소기업 수출을 견인한 '1등 공신'이 바로 단기수출보험이다. 중소기업의 손해율이 300% 수준 이상으로 치솟았지만 무역보험공사가 이를 다 흡수했다. 민간 금융회사였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외국계 기업 시장잠식 우려도 여전하다. 실제 2005년 단기수출보험 시장을 민간에 개방한 일본의 경우 대형 손보사조차 해외 바이어 정보 및 리스크 심사 등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대부분 유럽 '빅3'와의 제휴에 나섰다
현재 아투라디우스(네덜란드), 코파스(프랑스), 율러 헤르메스(독일) 유럽 '빅3' 재보험사는 세계 신용보험시장의 약 85% 점유하고 있다. 해외리스크 조사평가와 채권회수 경험이 부족한 국내 손보사가 해외 보험사들과 손잡고 국내 수출보험 시장을 잠식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단기수출보험은 WTO(세계무역기구)체계 아래서 용인되는 유일한 수출진흥 정책수단이다. 단기수출보험 시장을 외국계 기업이 잠식할 경우 정부가 수출진흥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
박광서 건국대 국제무역학교수는 "단기수출보험은 기본적으로 정책금융"이라며 "자세한 보완책은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정책금융 수단을 민간에 개방해 효율화를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