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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에서 과로 공화국 탈피를 목표로 도입한 주 52시간제가 흔들리고 있다. 현재 방향대로라면 대기업, 중소기업에 이어 내년 하반기에 주 52시간제를 실시해야 하는 영세 기업도 시행 유예가 불가피하다.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감안하면 문재인정부가 임기 내에 주 52시간제를 완료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주 52시간제는 지난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내년 50~299인 사업장, 2021년 7월 5~49인 사업장에 적용된다. 정부는 기업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300인 이상 사업장, 50~299인 사업장에 계도기간을 각각 최대 9개월, 1년 부여했다. 계도기간은 사실상 주 52시간제 시행을 늦추는 효과를 낸다.

계도기간 부여는 정부로선 고육지책이다. 정부는 그동안 50~299인 사업장 계도기간 부여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 탄력근로제(탄근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필요성만 강조했다. 탄근제 최대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면 기업 대부분이 주 52시간제를 지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탄근제는 일이 몰릴 때 오래 일하는 대신 다른 날 적게 근무해 법정근로시간(40시간)을 맞추는 제도다. 기업은 바쁜 시기에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돼 있어 논의는 21대 국회로 넘어갈 수도 있다.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준비 상황도 뚜껑을 열어보니 턱없이 미진했다. 정부가 국회 논의만 1년 가까이 바라보다 중소기업의 실상을 파악하곤 사실상의 유예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문제는 계도기간이 습관처럼 부여되고 있는 점이다. 이재갑 장관은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50~299인 기업은 대기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계도기간을 더 부여했다"고 발언했는데 이 논리대로라면 5~49인 사업장의 계도기간은 최소 1년 이상이어야 한다. 아울러 탄근제 법안이 국회에서 늦게 처리될수록 5~49인 사업장에 계도기간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질 수 밖에 없다. 정부가 5~49인 사업장에 계도기간을 1년 부여한다면 영세 기업은 주 52시간제를 사실상 다음 정권인 2022년 7월부터 시행하게 된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 52시간제 단계적 도입을 결정한 것은 기업 규모별로 준비에 필요한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었는데, 계도기간을 또 부여하는 건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