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천사의 탈을 쓴 무역장벽 '탄소국경세'④

정부가 EU(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탄소국경세)'에 따른 국내 산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다. 이미 배출권거래제(BTS)를 시행하고 있는 국내 산업계가 EU 추가 규제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는 RE100과 RPS(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 등 기존 탈탄소 관련 제도에 따른 부담이 CBAM 인증서 수량감면시 포함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환경부 등 관계부처가 함께 EU 탄소국경세 관련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산업부 통상교섭본부가 협상을 맡고, 기재부와 환경부 등이 함께 제도개선과 한국측 입장정리에 나설 계획이다.
EU 집행위원회가 14일(현지시간) 발표한 '피트 포 55(Fit For 55)'에는 철강과 시멘트, 화학비료, 알루미늄, 전기 등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EU 배출권 가격을 기준으로 탄소배출 비용이 이보다 적은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이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만 유럽에 상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26년부터 시행하지만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하면 시간이 충분치 않다.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국내 산업계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수입품 원산지에서 탄소가격을 이미 납부한 경우 그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 수량감면 요청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활용해 한국 기업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배출권거래제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한국 배출권과 EU 배출권이 동등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아울러 기업들이 배출권 이외에 부담하고 있는 비용 또한 CBAM 인증서 수량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 기업들은 RE100과 RPS 등 다양한 방식으로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을 내고 있다. 해당 제도 외에도 전기요금에 환경부담금이 포함돼 있으며, 석유 구매시에도 다른나라에 비해 높은 세금을 내고 있다. 기업들이 이미 이중 삼중의 탄소감축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이같은 비용 또한 CBAM 인증서 감면 혜택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EU 집행위원회에서도 국가마다 환경규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있다"며 "조세형태의 탄소배출 비용 부담 또한 배출권과 유사한 것으로 봐 감면해 주겠다고 이미 발표했는데, 정부 목표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배출권 가격과 기타비용 부담을 모두 (CBAM 인증서 대상에서) 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배출권 가격과 전기요금, 유가 등 여러 수단을 통해 기후변화를 막기위한 세금을 기업이 부담하고 있다"며 "이중부과를 할 수는 없으니 정부 입장에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독자들의 PICK!
EU 입장에선 한국의 손을 들어줄 여지가 충분하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EU 탄소국경세 도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군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다. 실제로 EU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수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제도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알려졌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감축정책이 인정을 받을 경우 추후 탄소국경세가 모든 품목으로 확대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세계적인 탄소배출 규제 강화에 대비해 정부가 대대적인 R&D(연구개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U 외 다른 나라들도 연이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상준 연구위원은 "EU의 탄소국경세 도입은 시작일 뿐"이라며 "다른나라도 유사한 제도를 만들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무엇보다 저탄소 생산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게 한국이 주장하는 탄소중립의 방향과도 맞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