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는 건 싫어"...착한 가면 뒤 숨겨진 EU의 민낯[이지경제]

"손해보는 건 싫어"...착한 가면 뒤 숨겨진 EU의 민낯[이지경제]

세종=안재용 기자
2022.01.15 08:00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쇄빙LNG선/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쇄빙LNG선/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맞서는 투사 이미지를 보였던 유럽조차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결국 이기적인 감추지 못하고 있다. EU(유럽연합) 경쟁당국의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불허는 냉정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EU 경쟁당국은 13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간 M&A(인수합병)을 불허한다고 발표했다.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시장에서 두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속내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EU 집행위원회는 두 기업간 인수합병을 불허하며 'LNG 운반선의 50% 이상을 유럽에서 발주하고 있다'는 단서를 남겼다. 두 기업이 글로벌 LNG 운반선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시장 비중이 70% 이상임을 고려하면 굳이 서술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LNG 운반선의 주요 수요자가 유럽기업임을 강조한 것이다.

세계 해운시장은 사실상 유럽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 1위는 덴마크의 머크스, 2위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합작기업 MSC가 바짝 쫓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미주노선은 한국이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해당 구간조차 한진해운이 경영사정 악화로 폐업한 이후 빈자리를 두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3위는 프랑스의 CMA CGM로 중국 COSCO를 제쳤다. 해운시장 점유율이 높다는 것은 조선산업의 주요 수요자라는 뜻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조선기업 합병을 불허한 EU 집행위원회의 결정이 단순히 시장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LNG운반선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피해를 볼 수 있는 곳들이 주로 유럽 기업들이란 판단이 이번 결정의 핵심 배경이지 않을까.

최근 EU의 행보는 기후위기에 동의하는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가웃거리게 한다. '친환경'을 명분으로 20세기에 잃어버린 유럽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기술력으로 되찾으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는 얘기다.

EU는 자동차에 대해 엄격한 탄소배출 규제를 적용하며 세계 차 시장을 흔들었다. EU의 규제를 지킬 수 있는 자동차는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카 밖에 없다는 논평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조선산업을 부활시킨 LNG운반선 시장의 부흥도 EU 덕분이다. EU가 선박운항의 탄소배출에 강한 규제를 걸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라는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보였던 행보는 최근 의심받고 있다. EU는 세계최초로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을 발표했다. 탄소규제가 약한 나라로 생산기지가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선제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던 한국도 불안한 상황이다. EU가 한국의 탄소배출거래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 기업들의 비용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EU 그린택소노미도 환경 문제에 대한 유럽의 진의를 의심하게 한다. 한국은 K-택소노미를 발표하며 원자력발전을 제외했다. '유보'란 단서를 달았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포함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탄소를 배출하지는 않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가 있어 완전한 친환경으로보기는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는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부담을 안고 내린 결정이다.

반면 EU는 프랑스 등 원전강국의 입장을 받아들여 EU 그린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켰다. 방사성폐기물 처리 계획을 밝혀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탈원전 운동이 체르노빌 사고 발생 이후 유럽에서 시작됐고 주요한 정책이 해당 국가에서 시행됐음을 고려하면 의아한 결정이다. 결국 탄소중립 실현을 재생에너지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한국의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건설에 참여하는 기업 명단을 살펴보면 언제나 유럽의 에너지기업 이름이 상단에 올라 있다. 수소경제 도입 초기에 제작된 수소생산설비에도 유럽기업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이런 분야에서 유럽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데 우리는 어떤가. 때론 보다 냉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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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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