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전 부활의 시험대' 체코를 가다③

"한국 정부의 원전 생태계 부활 선언은 우리에게도 큰 메시지다."
체코 트르제비치에서 만난 원전 방사능 계측기 제조기업 '누비아'의 알레쉬 도쿠릴(Ale? Dokulil) 이사는 윤석열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 선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원전을 만들고 수출도 하는데 자기 집에는 짓지 않는다?"라고 반문하며 전 정부 탈원전 정책의 이중성을 지적했다.
체코 두코바니 지역의 신규 원전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 비체슬라프 요나쉬(V?t?zslav Jon??) 두코바니 지역협의회 의장은 한국 새 정부의 원전 산업 생태계 강화 방침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원전 수주를 하는데 긍정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요나쉬 의장은 "정부의 지지 없이 신규 원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며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원전 수주엔 장애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두산이 체코의 발전용 터빈 기업 스코다파워를 인수해 설립한 두산스코다파워의 강석주 법인장 역시 "이전에는 '한국에서의 (원전 분야) 국내 정책과 해외 정책이 다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체코 현지의 원전 산업 관계자들이 한국 정부의 원전정책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입찰 가격과 시공능력 등으로만 판가름나지 않는 원전 수주전의 특성 탓이다. 한 번 지어두면 수십 년 동안 유지 보수를 해야 하는 원전의 특성상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나라에 원전 건설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프로젝트를 놓고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전력공사(EDF), 한국의 한수원 등 3곳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입찰이 미국 에너지부의 지원을 받는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정부가 최대주주인 EDF와의 경쟁임을 고려하면 한수원과 한국 정부의 입장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와 EU(유럽연합)의 논의를 주도한다는 점을 앞세워 체코 정부에 정치적 로비가 가능하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24년 최종입찰대상 선정을 앞두고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정치적·외교적으로 고공지원을 받는 미국과 프랑스를 상대하는 한수원은 두코바니 지역 주민과의 친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원전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연 설명회(라운드테이블)에서 유일하게 한수원만 지역주민과의 협력 사업을 제안한 게 대표적인 예다. 2018년부터는 체코 현지 아이스하키팀 HST에 대한 후원도 이어오고 있다. 체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지원을 통해 한수원 브랜드를 알리고 친밀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두코바니 원전 인근 지역에 살고 있는 HST팀 매니저 다니엘 슐라팍(Daniel ?lap?k)은 "지난해 원전 산업과 관련한 라운드테이블을 열었는데 미국 업체는 참가하지 않았다"며 "프랑스 업체는 참가했지만 현지 업체, 주민과의 협력 방향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수원은 이 지역 주민들과 활발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며 "원전 공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서 안전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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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의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건설 사업도 체코 원전업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원전 건설 사업은 기술적·정책적 이유로 공사 지연이 빈번한데, 바라카 원전 건설사업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공사 기한을 준수한 사업으로 유명하다.
알레쉬 도쿠릴 이사는 "정부의 지지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바라카 프로젝트는 정해진 기간과 예산에 맞춰 마무리 됐다"며 "한수원은 바라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원전 수출능력을 분명히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수주 가시권에 있는 이집트 원전사업과 루마니아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사업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 노력 역시 한수원이 내세울 강점 중 하나로 꼽힌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한국은 지난 50여년간 국내·외 원전선설을 통해 세계 최고의 가격경쟁력과 사업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UAE 사업으로 정해진 예산과 공기 내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역량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