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동대문 인근엔 '도심 속 방앗간'이 있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쿠엔즈버킷(queens bucket) 건물에선 국산콩을 압착해 콩기름을 짜는 공정이 매일 이뤄진다. 입구에 들어서면 고소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지어 콩기름과 참기름을 사 가는 필수 관광 코스다.
2012년 창업한 프리미엄 참기름·들기름 업체 쿠엔즈버킷은 지난해부터 국산콩 시장에 뛰어들었다. 저렴한 수입콩 위주의 콩기름 시장에 국산콩이라는 값비싼 소재를 활용했다. 이곳에서 제조된 콩기름 가격은 200ml에 3만2000원이다. 1.8ℓ 짜리 수입 콩기름이 5000원대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비싸다. 국산콩과 수입콩의 가격 차이가 최대 3배까지 육박하는 탓이다.
◆저온압착으로 연 콩기름 시장…Non-GMO 스낵 콩부각
고가의 콩기름이지만 수요는 확실하다. 기존 참기름·들기름에서 국산콩을 활용한 콩기름을 제조하고 나서 연간 매출이 3억원가량 상승했다. 올해 사용한 국산콩만 해도 40톤(t)에 달한다. 이 가운데 매달 3t은 경기·전북 지역 학교 급식업체에 납품하는 콩기름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차별성은 원료와 공정에 있다. 저온압착 기술을 활용해 콩 본연의 고소한 풍미를 살린 콩기름을 제조했다. 화학적 추출 방식 대신 물리적 압착으로 기름을 짜 콩에 함유된 '이소플라본' 성분을 보존하는 방식이다. 헥산 등의 화학용매제를 넣어 기름을 뽑아내는 화학적 추출과 달리 화학 성분이 남지 않는다. 콩기름을 압착한 뒤 나온 대두박은 대체 단백질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는 "학교 영양사들에게 국산콩의 장점과 물리적 압착 방식의 안전성을 설명하며 콩기름을 홍보하고 있다"며 "콩기름을 찾는 소비자 가운데는 당뇨병 환자도 많은데 밥을 지을 때 콩기름을 한 숟가락 넣으면 탄수화물의 당화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대전의 스낵 기업 콩드슈도 국산콩을 활용하고 있다. 콩 튀김을 만들던 어머니 영향을 받아 자매인 서동아·서동주 대표가 운영 중인 이 업체는 밥 반찬이던 콩 튀김을 재해석했다. 와사비·매콤치즈 등 시즈닝을 입혀 과자처럼 즐길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대전 중구 선화동 중구청역 인근에 '콩뿌각'이라는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콩부각의 핵심 원료 역시 국산콩이다. 수입산 콩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알이 크고 고소한 풍미가 강해 제품 완성도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콩을 으깨지 않고 콩알 형태 그대로 튀기는 제품 특성상 품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산콩이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이라는 점도 국산콩을 고집하는 이유로 꼽힌다.
서동아 콩드슈 대표는 "수입산 콩도 공정은 같지만 콩 크기와 식감, 고소함에서 차이가 나고 콩이 작거나 품질이 낮으면 찹쌀을 입히는 과정에서도 완성도가 떨어진다"며 "수입산 콩으로 단가를 낮추기보다 한국형 콩부각으로 인도·홍콩 등 해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산콩 생산 늘고 자급률 상승…가격 변동성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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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콩의 이런 변신이 가능했던 비결은 정책적 뒷받침 덕분이다. 쿠엔즈버킷·콩드슈 2곳 모두 정부의 지원사격을 받았다. '국산콩(두류) 제품화 패키지 지원사업'은 국산콩을 활용한 제품의 연구개발(R&D)부터 제조 공정, 유통·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사업 예산도 지난해 10억5000만원에서 올해 18억원, 내년에는 45억원으로 대폭 확대됐다.
최근 국내 콩 생산 기반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콩 생산량은 2021년 11만787t에서 올해는 15만6000t에 이른다. 같은 기간 콩 재배면적도 2021년 5만4444㏊에서 2024년 7만4018㏊까지 확대됐다. 콩 식량자급률도 2021년 23.7%에서 2024년 37.4%로 상승하는 추세다.
정부는 이 추세에 맞춰 소비 촉진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업계에서 수입콩 대비 5분의 1 수준에 그쳤던 국산콩 사용 비중이 30%대까지 확대됐다. 수입콩과 비교해 품질이 우수하다는 인식도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만 수요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조영제 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 회장은 "국산콩 소비 확대를 위해서는 단기 지원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과 과감한 수요 창출 전략이 필요하다"며 "GMO 완전표시제의 조속한 정착과 함께 국산콩의 안전성과 식물성 단백질 경쟁력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격 변동성 역시 변수다. 김종인 인천대 동북아통상학부 교수는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면 기업의 사업 계획 수립이 어려운 만큼, 정부가 수매·비축을 통해 가격 변동 폭을 줄이는 완충 역할을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단가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상문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국산 콩 소비를 늘리기 위해 2026년에도 제품 개발과 홍보 지원을 확대하고 제품화 패키지 지원사업 예산을 늘릴 계획"이라며 "신제품 개발 시 비축콩 할인 공급을 확대하고 국산콩의 식물성 단백질 경쟁력을 알리는 홍보·판촉 행사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