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추진하는 전기요금 개편안에 대해 산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계절·시간대별 요금제(계시별 요금제)와 지역별 요금제 등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산업경쟁력에 대한 고려는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2일 정부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추진하는 전기요금 개편안은 계시별 요금제 조정과 지역별 요금제 도입 2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계시별 요금제는 현재 전기요금이 높은 낮 시간대 요금을 낮추고 반대로 저녁·밤 시간대 요금을 높이는 방안이다. 지역별 요금제는 전기요금에 송전망 비용을 반영해 전기생산지에서 가까운 지방일수록 요금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 개편 방안의 핵심은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높이고 에너지믹스 변화에 따른 전력계통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1977년 처음 도입된 계시별 요금제는 낮 시간 요금을 높여 수요부하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재생에너지 공급이 급격하게 늘면서 이제는 낮 시간 전기 사용을 적극 권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면서 전기요금 개편 필요성도 그만큼 커졌다. 이재명 정부는 현재 약 30GW(기가와트)인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2030년까지 100GW로 3배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따르면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8.4%에서 2038년 29.2%로 확대될 예정이다. 현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적극 추진하는 만큼 2040년까지 계획을 담은 12차 전기본에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보다 확대될 전망이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기저 전원인 원전의 출력제어가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특성상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지는 간헐성의 문제가 있다. 재생에너지의 주력인 태양광의 경우 여름이나 낮 시간에는 발전량이 많지만 밤에는 아예 전기가 생산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생산이 몰리는 낮 시간에 계통부하를 줄이려면 원전 등 기존 전원의 발전량을 제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출력감발은 그 자체로 비용이 들어간다. 발전단가가 저렴한 원전보다 발전단가가 높은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기요금 원가가 상승하는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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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별 요금제 조정과 지역별 요금제 도입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많은 낮 시간대와 지방의 전기요금을 낮춰 재생에너지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현 요금제 개편만으로는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 급등으로 인한 부담이 완화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업황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등은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요금개편안의 혜택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산업계는 근본적으로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이 과거 정부들의 정치적 결정으로 인한 한국전력의 재무악화를 기업에 전가하는 조치라고 보고 있다. 문재인정부 당시 탈원전과 연료가격 급등으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컸지만 정부가 요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한전은 수십조원의 적자를 떠안았다.
윤석열 정부 역시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주택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 2021년 1kWh(킬로와트시) 당 100원 초반대였던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난해 180원대로 약 70~80% 가량 상승했다.
정부는 계시별 요금제 개편에 따라 산업계 대부분에서 요금 인하 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계시별 요금제를 통해 전체적으로 대부분 기업들이 득이 된다"며 "24시간 가동 업체들은 지역별 요금제로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기업들의 부하이전을 유도할 만큼 계시별 요금제를 조정할 수 있느냐다. 기후부는 계시별 요금제를 개편하면서 각 산업별로 요금을 달리 적용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산업은 생산시간대 조정 등을 통해 알아서 요금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에서 경부하 대비 최대부하 요금은 최소 50%에서 2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24시간 가동 업체들은 부하시간을 이전할때 설비 데미지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이 쉽지 않다"며 "부하시간 조정보다는 전기요금 자체를 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기요금 개편에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산업경쟁력에 대한 고민도 담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전기요금 결정이 정치적 요인에 따라 크게 좌우되면서 시장 기능이 왜곡됐다"며 "전기요금 체계를 정상화해 가격신호 기능을 회복하고 저소득층·중소기업·에너지 다소비 업종에 대한 표적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