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엽, 부끄럼 많던 소년이 이뤄낸 원대한 꿈 [인터뷰]

황인엽, 부끄럼 많던 소년이 이뤄낸 원대한 꿈 [인터뷰]

한수진 ize 기자
2024.12.04 09:36

'조립식 가족'서 섬세한 연기로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

황인엽 / 사진=케이엔스튜디오
황인엽 / 사진=케이엔스튜디오

“학창 시절 되게 내성적이었어요. 누가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그것조차 말하기 부끄러워서 대답을 못 했어요.”

자신의 꿈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내성적인 소년은 아이러니하게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가 됐다. 그 꿈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즐겨 보던 드라마가 슬며시 마음 한쪽에 스며들면서 시작됐고, ‘발리에서 생긴 일’에 나오는 조인성이 마음 속 별이 되면서 더 크게 자라났다. 스물일곱, 조금 늦은 나이였지만 결국 그 꿈을 이뤘고 어느덧 데뷔 7년 차가 됐다.

황인엽의 인상은 굉장히 묘하다. 결국 배우가 될 운명을 타고난 신비한 아우라가 있다. 첫인상에서 뾰족하다는 느낌을 받다가도 씨익 웃을 때면 아이처럼 말갛다. 그런 이채로움은 금세 대중 눈에도 띄었고, 빠르게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출세작 ‘18 어게인’(2020)을 만난 이후 ‘여신강림’(2020), ‘안나수마나라’(2022), ‘왜 오수재인가’(2022)에서 주연을 맡았고, 최근 종영한 JTBC ‘조립식 가족’에서도 주인공을 연기했다.

황인엽 / 사진=케이엔스튜디오
황인엽 / 사진=케이엔스튜디오

‘조립식 가족’은 그에게 “찍고 나서 빠져나오기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다. 그만큼 사랑했던 현장이었고, 애정했던 역할이었다. ‘조립식 가족’이 마지막회 방송을 하고 난 후 “불빛 없는 방 안에 누워 공허함”을 느꼈고, 함께 출연한 배우들에게 “다음 작품 하지 말라”고 서운한 마음에 떼를 쓰기도 했다. 그것은 작품에 깊이 빠져들게 된 배우로서의 성장이었고,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한 혼신의 여운이었다.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조립식 가족’은 찍고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게 좀 힘들었어요. 대본이 정말 좋아서 선택했고, 모든 등장인물이 지닌 상처와 상황 유대가 정말 좋았거든요. 특히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과의 상호 작용이 잘 됐다보니 더 여운이 길게 가더라고요. 긴 시간 웃으면서 함께 했으니까(웃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촬영장에 가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고 공허함이 밀려오더라고요.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니까 거기서 오는 상실감에 좀 슬펐어요. 이별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감독님, 배현성, 정채연한테 다음 작품 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왜냐하면 그들과 누가 다시 추억을 쌓는다는 게 부럽고 질투 나서요.”

황인엽이 ‘조립식 가족’에서 연기한 김산하는 속 깊은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인물이다. 힘든 일에도 “자고 나면 괜찮아진다”라며 혼자 삭이고 참는 게 버릇이었고, 마음 깊은 곳 숨겨둔 상처로 가시 돋친 고슴도치 한 마리를 품고 자랐다. 산하가 여덟 살 때, 동생 소정이 죽었고 그 어린 나이에 그 책임을 자신에게 물었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며 산하 곁을 떠났다. 그때 산하에게 손을 내민 건 바로 아래층 사는 주원(정채연)이었다. 황인엽은 평범하지 않은 사연으로 점철된 위태로움을 눈빛과 말의 온도에 그윽하게 욱여넣고, 주원과의 관계에서 간질간질한 청춘의 싱그러운 설렘을 피워냈다.

황인엽 / 사진=케이엔스튜디오
황인엽 / 사진=케이엔스튜디오

“산하가 표면적으로는 날카로워 보여요. 그래서 표현할 때 많이 웃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늘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표현을 크게 하지 않으려고 했죠. 그런 산하가 유일하게 웃을 때는 주원과 해준(배현성)을 바라볼 때예요. 그럼에도 감정선이 깊은 인물이다 보니까 말을 대신할 수 있는 표현 방법이 눈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눈으로 산하의 진심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눈빛으로 ‘나 너 걱정해’라는 의도를 담아내는 등 눈으로 먼저 말했어요.”

그런 그가 ‘조립식 가족’을 촬영하면서 가장 치열했던 순간은 엄마의 비정에 가슴 아파하던 장면도, 동생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장면도, 엄마에게 진심을 이야기하며 목 놓아 울던 장면도 아니었다. 이런 장면을 찍을 때는 함께 했던 동료 배우들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진심이 우러났다.

“스스로 치열하게 연기했던 장면들은 의외로 멜로신이었어요. 감정을 서로 받아서 연기할 때는 옆에 있는 배우를 믿었어요. 해준이가 산하가 수면제를 먹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엄청 눈물이 났어요. 아버지들(최무성, 최원영), 엄마(김혜은) 역까지 훌륭한 선배님들이 좋은 감정을 전달해 주시니까 연기가 잘 됐죠. 오히려 멜로신을 찍을 때 감이 안 잡혔어요. 이 몽글몽글한 설렘을 어떻게 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각자가 생각하는 게 혼재되니까 종합해서 합을 맞추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멜로신도 개인적으로 다 마음에 들어요.”

황인엽 / 사진=케이엔스튜디오
황인엽 / 사진=케이엔스튜디오

극 중 정채연과의 로맨스는 누가 봐도 그 케미스트리가 좋았다. 황인엽은 “(정)채연이가 어느 인터뷰에서 ‘키스신에서 설렜다’고 했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잘 주어지긴 했어요. 현장 분위기 자체가 몽글몽글했어요. 감독님께서 장면을 찍을 때 머릿속에 상상 속 플레이리스트를 틀어주셨거든요. 그런데 사실 키스신 찍을 때 채연이가 거의 마무리 때쯤 새벽 촬영이라 졸린다고 엎드렸거든요. 그런데 설렜다고 하니(웃음).”

황인엽에게 ‘조립식 가족’은 드라마 제목처럼 새로운 차원의 가족을 만들어준 작품이다. 심지어 “약간 데인 것 같기도 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정이 깊이 들었다. 배현성, 정채연과 함께 부른 드라마 OST도 “들으면 울까 봐” 아직 듣지 않았다고 한다. 황인엽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작품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 마음 너머에는 주변인을 대하는 마음이 굉장히 존귀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바랐던 게 있어요. 예전에 드라마를 찍었을 때 선배님들한테 커피차가 온 걸 봤어요. 거기에 응원 문구가 붙어있는 거예요. 나도 지지해 주는 팬이 있는 배우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부러웠어요. 연기를 하는 건 배우로서 당연한 거지만 사랑받는 배우가 되는 건 다른 개념 같아요. 원해서 택한 직업이지만 팬들과 소통이 잘 되는 게 개인적인 꿈이었어요. 많은 분이 사랑해 주셔서 이렇게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는 관심을 받지 못하면 활동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팬들을 생각하면 항상 엄청 든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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