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의 로망’을 이야기할 때 “퇴사”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 사는 일이 무엇 하나 쉽겠냐만,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최첨단 건물의 세련된 사무실에서 일을 해도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건 여전히 고되기 그지없는 일이다.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런 마음에 사표를 늘 양복 안주머니에 지니고 다닌다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는 너무 식상해졌을 정도다.
그러나 직장인의 흔한 로망이 어디 그뿐이랴. 어딜 가나 꼭 있는 못된 심보의 상사나 동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고, 치사하거나 분한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포커페이스로 차분히 능력을 발휘해 판을 뒤집고 진정한 위너가 되고 싶다. 탁월한 업무 능력으로 널리 알려져 사내에서는 물론 업계를 평정하고 싶다. 나는 비록 억울한 일이 많았지만, 내 부하직원들은 마음 다치는 일 없게 보호해주고 싶다 등등.
JTBC 주말극 ‘협상의 기술’(극본 이승영, 연출 안판석)이 직장인들의 이러한 크고 작은 로망들을 담아 안방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고 있다. 드라마는 산인그룹의 11조원 부채 상환을 해결하기 위해 산인 계열사 M&A에 나선 협상 전문가 윤주노(이제훈)와 그의 팀원들이 펼치는 활약상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그룹 총수인 송재식(성동일) 회장의 부름을 받고 해결사로 나선 윤주노가 우여곡절 끝에 M&A 계약을 성사시키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기업을 사고파는 M&A 이야기가 경제 뉴스에나 나오는 무미건조한 숫자놀음일 것 같았다면 오산이다. ‘협상의 기술’은 그룹 내 알짜 기업인 건설사를 매각하고, 온라인 유통 플랫폼으로 쓸 게임사를 인수하는 등 일련의 M&A 협상 과정을 인물들 간의 치열한 심리전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딱딱한 기업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늘 중심에는 사람이 서 있는 플롯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훅 끓어오르게 한다. 로맨스 드라마가 남녀 주인공의 설레는 밀당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간지럽힌다면, ‘협상의 기술’은 윤주노를 필두로 한 산인 M&A팀과 상대 회사, 혹은 윤주노 대 산인 CFO 하태수 (장현성) 전무 등의 피 말리는 줄다리기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게다가 매일매일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는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의 현실을 안판석 감독이 밀도 높은 연출로 화면 안에 고스란히 옮겨 놓아 찬사를 받고 있다. M&A만 아닐 뿐 삭막한 사무실에서 시도 때도 없는 불호령과 기싸움을 대비하며 긴장 속에서 사는 직장인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실적인 에피소드들을 드라마 안에 촘촘히 배치해 보는 이들을 수시로 울컥하게 만든다.

‘협상의 기술’ 속 사내 정치를 하는 임원진들이나 임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발걸음을 총총대는 인물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자신의 경험과 트라우마를 토로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결국 ‘협상의 기술’은 M&A를 앞세웠을 뿐 직장인의 전쟁 같은 삶을 관전하는 재미로 시청자들을 화면 앞에 모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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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역시나 드라마는 판타지다. 주인공 윤주노는 회사 안팎에 소문난 전설적인 협상가로 매번 미션 임파서블 같은 일들을 해낸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백발만으로도 카리스마 넘치고, 백발만 아니었다면 별명이 백사가 아니라 꽃미남이라 불렸을 훌륭한 마스크의 윤주노는 냉철한 눈빛으로 상대의 수를 읽으며 협상에 나선다. 벼랑 끝에 선 듯한 순간에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고 끝내 상대로 하여금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든다. 직장인들이 꿈꾸는 능력자 그 자체다.
또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카리스마의 소유자이지만, 늘 강강약약의 자세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는다. 특히 팀원들에게는 더없이 훈훈한 팀장이다. 인턴 최진수(차강윤)가 실수로 정보를 흘렸을 때는 질책은커녕 역으로 최진수로 하여금 거짓 정보가 흘러 나가게 하는 방법을 쓰며 위기를 타개했다. 팀원인 곽민정(안현호)의 이삿날에 새 가전제품을 선물로 보내주는 츤데레 같은 면모를 보였다. 상사에게는 강하고 부하직원에게는 따뜻한, 모두가 꿈꾸는, 멋진 팀장이다.

그야말로 직장의 유니콘 같은 윤주노다. 자식 같은 계열사를 정리하는 윤주노에게 역정을 내고 불같이 화를 내던 송 회장도 결국 윤주노가 보이는 눈부신 성과에 마음을 열었다. 직장인의 꽃이라는 임원 자리를 제안했다. 9회 예고에서는 윤주노가 임원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며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이제 직장인들의 또 하나의 로망인 임원 자리에 윤주노가 오를 것인가. 매회 직장인의 로망을 들쳐보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협상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