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TT 시대, 예능의 생사여탈권은 더 이상 방송국이 아닌 시청자에게 있다. 수많은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지금, 시청자의 선택은 콘텐츠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힘이 됐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으로 돌아온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는 이 명제를 가장 생생하게 입증한 사례다.
한때 KBS2 예능으로 방송됐던 ‘홍김동전’은 고정 팬층을 확보하고도 낮은 시청률과 보수적인 편성의 벽을 넘지 못해 폐지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예능프로그램의 종영은 단어 그대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더 이상 콘텐츠는 방송사 채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고, 결국 넷플릭스에서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이하 ‘도라이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 프로그램은 공개 첫 주, 넷플릭스 대한민국 시리즈 TOP 10 1위에 오르며 화려한 재기를 알렸다.
‘도라이버’를 KBS에서 밀려났던 프로그램의 단순한 이전으로 치부하자는 건 절대 아니다. 제작진도, 출연진도, 포맷도 기존과 달라진 건 없지만, 팬덤의 힘이 그리고 플랫폼의 유연성이 만나 이례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시청자들이 예능의 생명을 연장시켰다는 의미다.

프로그램 폐지설이 떠오른 당시, 팬들은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동전에 있다는 것에 착안한 애칭(저금통)을 스스로 붙이고, 이 이름으로 커피차를 보내 제작진과 출연진을 향한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또 KBS 청원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렸으며, 트럭 시위까지 감행했다. 그 열정이 공영방송의 보수적인 벽을 넘기란 어려웠지만, 새로운 플랫폼에선 달랐다. KBS를 퇴사한 박인석 PD는 기존 제작진, 출연진과 함께 팀을 재정비했고, 마침내 넷플릭스에서 ‘도라이버’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폐지된 프로그램이 다시 살아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건 팬들이 만들어낸 기적”이라는 박 PD의 말처럼, ‘도라이버’의 부활은 지금의 콘텐츠 생태계에 있어 상징적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그램이 기존 OTT 예능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요즘 예능은 풍성한 제작비 지원 아래 해외 로케이션과 자극적인 설정 등으로 앞다퉈 경쟁한다. 하지만 ‘도라이버’는 소박한 스튜디오에서 펼쳐지는 허술한 게임, 정제되지 않은 토크, 출연진의 유쾌한 티키타카만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간다. 이 단순함이 오히려 지금의 복잡한 예능 판도 속에서 강력한 무기가 됐다. 역시 ‘홍김동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프로그램의 흐름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플랫폼에 맞춰 한 회 분량은 30분 내외로 짧아졌고, 내용도 가볍고 친숙하다. ‘밥 친구’(밥 먹으면서 보기 좋은 프로그램)로 제격인 이 편안함은 오히려 시청자를 사로잡는 요소가 됐다. 여기에 과하게 웃기려 하지 않아도, 함께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예능을 이끄는 출연진의 팀워크는 ‘도라이버’를 찾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이다. 김숙 홍진경 조세호 주우재 장우영은 이미 ‘홍김동전’ 시절부터 찰떡 호흡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이들은 여전히 별다른 설정 없이도 자연스러운 유머를 만들어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분장에 망가지고, 황당한 게임에 진심으로 임한다. 그 모습은 꾸밈없고 유쾌하다. 날 세우지 않는 농담, 과하지 않은 웃음은 ‘도라이버’를 시청하면서도 웃고, 시청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곱씹으며 오래도록 웃음을 유발한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도라이버’는 폐지된 예능의 재활용이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콘텐츠가 플랫폼과 팬덤을 만나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품었다는 데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예능이 더는 방송국의 편성표 안에서만 생존하지 않는 이 시대에, 시청자와의 프로그램의 진한 교감이 콘텐츠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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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이버’는 20부작으로 기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연출진은 반응이 좋다면 얼마든지 시즌을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 예능을 살린 것도, 앞으로 지켜낼 존재도 결국 시청자라는 의미다. 한 번 사형 선고를 받았던 예능이 다시 살아난 지금, 시청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들의 웃음이 다시 꺼지지 않도록, 꾸준한 응원과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조이음(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