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현진인가, ‘러브 미’로 증명하는 감정의 깊이

왜 서현진인가, ‘러브 미’로 증명하는 감정의 깊이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1.07 10:11
배우 서현진이 JTBC 드라마 러브 미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서준경 역을 맡아 깊은 상처를 지닌 인물을 섬세하게 연기하고 있다. 서현진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연기법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으며, 이는 그가 그동안 쌓아온 다층적인 감정 연기 역량의 결과라고 평가받고 있다.
사진제공=JTBC·SLL·하우픽쳐스
사진제공=JTBC·SLL·하우픽쳐스

“나를 보며 배우 전혜빈이 해준 말이 있다. ‘상처가 나면 도망치는 사람이 있고, ’상처다‘하며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라고. 그게 나를 표현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상처있는 캐릭터를 많이 선택하는 것 같다. 대본을 읽으면 그 캐릭터의 상처부터 보인다.”

배우 서현진이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긴 이 말은 그의 연기 이력을 관통하는 핵심 문장처럼 남아 있다. 실제로 그는 데뷔 이후 줄곧 상처를 지닌 인물들을 선택해왔고, 그 상처를 과장하거나 미화하기보다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이해하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소화해왔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러브 미’는 그런 서현진의 선택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서준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울고 웃고 화내는 감정의 폭발이 아닌, 담담함으로 포장한 일상 속에 깃든 상처와 슬픔을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JTBC 금요시리즈 ‘러브 미’(극본 박은영 박희권, 연출 조영민)는 스웨덴 원작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서현진이 연기하는 서준경은 부와 명예, 미모까지 다 가졌지만 정작 사랑만은 뜻대로 되지 않는 36세 산부인과 전문의다. 7년 전 엄마의 교통사고에 죄책감을 안고 가족과 거리를 뒀던 그는, 오랜만의 가족 식사 자리에서 끝내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엄마에게 날 선 말을 쏟아낸다. 엄마도 딸도 서로에게 받은 상처를, 이미 상해버린 감정을 풀지 못한 채 ‘다음’을 기약하지만, 그날 밤 엄마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다.

?사진제공= JTBC·SLL·하우픽쳐스
?사진제공= JTBC·SLL·하우픽쳐스

첫 방송부터 시청자의 마음을 파고든 건 이 비극적인 설정보다도 이를 대하는 서현진의 태도였다. 그는 엄마를 잃은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유지하려 애쓰는 얼굴로, 무심한 말투 중에도 새어나오는 외로움과 죄책감을 통해 상실 이후의 시간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특히 가족 식사 장면에서의 연기는 가장 편한 관계이기에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이라는 복잡한 관계의 이면을 그대로 담아내며 극의 밀도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서현진 연기의 핵심은 ‘덜어냄’이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제는 뭘 더 보여주기보다는 조금 덜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던 그는 ‘러브 미’의 서준경을 통해 덜어내는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울먹이지 않아도 슬픔이 전해지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분노가 느껴지는 연기. 감정은 크지 않지만, 보는 이들에게 긴 여운을 오래도록 남기는 연기 말이다.

이러한 연기가 가능한 이유는 서현진의 뛰어난 캐릭터 분석력 덕분이다. 서현진은 지금까지 제작발표회나 인터뷰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느꼈을 감정 구조와 행동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내곤 했다. ‘러브 미’의 서준경 역시 냉철한 전문의의 모습부터 사랑 앞에 흔들리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서현진은 폭넓은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소개팅 자리에서 무례한 상대방에게 “그러니까 지금 나랑 XX하자는 거죠?”라며 또박또박 내뱉는 장면에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명쾌한 딕션이 빛을 발했다. 한편 외로움에 방치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천천히 알아가봐요”라고 조심스레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사랑 앞에 선 여린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JTBC·SLL·하우픽쳐스
사진제공= JTBC·SLL·하우픽쳐스

‘러브 미’는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무거운 가족 서사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서현진은 첫 회부터 웃음과 눈물을 오가는 완벽한 연기로 쉽지 않은 드라마 톤에 균형을 더한다.

이처럼 다층적인 감정 연기는 서현진이 오랜 시간 쌓아온 역량의 결과다. 그는 드라마 ‘또! 오해영’과 ‘낭만닥터 김사부’ ‘뷰티 인 사이드’ ‘너는 나의 봄’ 등을 통해 로맨스 장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여기에서 안주하지 않고 ‘블랙독’ ‘왜 오수재인가’ ‘트렁크’ 등을 거치며 멜로의 외연을 넓혀왔다. 특히 상처를 드러내기보다 감추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감정의 표면이 아닌 깊이를 보여주는 연기에 집중해왔다.

서현진은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평범함을 집요하게 들여다볼 때 비로소 드러나는 특별함이 있다. ‘러브 미’의 서준경 역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깊은 외로움을 방치해온, 사랑 앞에서 여전히 두려운 평범한 사람이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반복하는 평범한 딸. 사랑 앞에서는 서툴고 두려운 평범한 여자다. 서현진은 이 평범한 인물의 내면에 숨겨진 특별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끄집어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끈다.

‘러브 미’는 이미 여러 번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서현진이 ‘왜 서현진인가’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도, 상처를 과시하지 않고도 인물의 서사를 끝까지 데려가는 힘. 담담함 속에 깃든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그럼에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의 얼굴을 서현진은 이번 작품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게 완성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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