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 역으로 열연

영화 '휴민트'는 총성과 추격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첩보물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의 얼굴에 머무는 작품이다. 거친 액션과 복잡한 사건 사이에서 끝낸 닿는 것은 임무와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남자의 얼굴이다. 바로 조인성이 연기한 조 과장의 얼굴이다. '휴민트'는 이 세심한 흔들림으로 이야기의 결을 더욱 풍부하게 밀어붙인다.
'휴민트'는 동남아 국제 범죄 조직을 추적하던 국정원 블랙요원 조 과장이 정보원을 잃은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새로운 정보원 채선화(신세경)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액션물이다. 특히 이 작품은 조인성이 '모가디슈', '밀수'에 이어 류승완 감독과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다. 늘 좋은 합을 보여줬던 둘은 한층 깊어진 호흡으로 다시 한번 근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조인성이 연기한 조 과장을 얼굴로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한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반복, 임무에 익숙해질수록 무뎌지는 감정과 쌓여가는 피로가 함께 담긴다. 조인성은 불필요한 감정 과시 없이 조 과장의 내면을 차분하고도 단단하게 밀어붙인다.
"국정원 요원도 결국 직장인이잖아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전날에 쌓인 피곤함과 약간의 찌든 느낌, 밤새 느꼈던 갈증에 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모습. 미생처럼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그런 생활적인 모습을 첫 신과 마지막 신에서 보여주려고 했어요. 수미상관을 맞추면서 직장인의 고달픔을 담고 싶었죠."

이 생활감은 극 중 직업인 국정원 요원의 디테일한 움직임과 태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조인성은 촬영 전 보안 절차를 거쳐 국정원 현직 교관들에게 직접 훈련을 받고, 요원의 시선과 동선을 몸으로 익혔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자세를 먼저 체득하는 과정이었고, 이는 조 과장이라는 인물을 설득하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신분증 검사도 하고 휴대폰도 다 내놓고 훈련에 들어가야 했어요. 교관님께 '무빙' 김두식 같은 초능력 요원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국가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날 가르쳐주신 교관님이 정말 멋있었어요. 급할 때는 여러 신체를 활용해서 장전하는 방식도 보여주셨어요. 그 부분을 멋이 아니라 현실성으로 영화에서 활용하기도 했고요. 기술적인 건 알려주시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는 끝내 말씀 안 해주시더라고요.(웃음)"
조 과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조인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지점은 나서지 않는 거였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안내자"라고 말하며 관객을 억지로 이끌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집중했다. 특히 휴민트(사람에 의한 첩보 활동)를 대하는 장면에서는 인간적인 온기를 드러내며 조 과장이라는 인물의 결을 한층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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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조 과장의 모습으로 시작을 열고 마지막을 닫잖아요. 그래서 연기를 너무 진하게 하면 안 된다고 봤어요.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연기가 과해지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그럼에도 캐릭터를 운용해야 하니까, 첫 장면에 강렬한 액션이 나오고 거기에 조 과장이 가진 무력함과 힘이 동시에 담기도록 신경 썼어요."

극 중 조 과장과 정보원 채선화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인성은 많은 고민을 기울였다. 두 사람의 감정선은 명확하게 드러나기보다 여러 층위가 겹친 복합적인 결로 전개된다. 인간적인 연민인지, 책임감에서 비롯된 집착인지, 혹은 사랑의 감정인지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조인성 역시 이 모호함을 의도적으로 유지했고, 그 해석을 관객에게 맡겼다.
"선화와의 관계를 다양하게 봐주시면 영화가 더 풍성해지거든요. 로맨스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어요. 그런 것들이 케미스트리라고 생각해요. 일부러 노리고 하지 않아도 나오는 화학작용이죠. 분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분위기 같은 건데, 그렇게 느껴주시고 해석해 주시면 좋죠. 착각은 또 자유고요.(웃음)"
'휴민트'에서 조인성의 연기는 이전 작품들보다 한층 부드럽고 낮다. 어느덧 데뷔 28년 차에 접어든 그는 수많은 작품을 거치며 연기 방식과 태도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강한 에너지로 장면을 채우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감정을 절제하고 표현을 덜어내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오래 했다는 건 새롭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죠. 대중의 기대치가 적어져요. 그렇기에 '내가 얼마나 더 단단해졌느냐'를 생각하게 돼요. 연기로 치면 가만히 있는 것도 진화라고 볼 수도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가만히 있기 힘들거든요. 경험이 그걸 견디게끔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 결국에는 연기를 하지만 연기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까지 가고 싶어요."
연기 스타일의 변화를 생각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노희경 작가님과 작업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가만히 상대를 정확하게 보고, 담백하게 대사를 하라고 하시더라. 보통 불안하면 불안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인물을 불안하게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만히 시선 처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지만 내겐 큰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