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예로부터 운명술사들에게 마음을 내맡기는 이유는, 모든 게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이 약할수록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의지한다. 스스로 낼 수 없는 힘의 원천을 다른 곳에서라도 찾아보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나름의 자격이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AI(인공지능)가 판을 치는 2026년에도 많은 사람들이 점을 보는 행위, 즉 점사(占辭)에 매달리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자신의 미래가 펼쳐진 페이지를 미리 넘겨다본 후 좀 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코드로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 있다.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의 ‘운명전쟁49’다.
디즈니플러스에서 2월11일부터 공개를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JTBC와 그 계열 채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스튜디오아예중앙에서 제작한다. ‘우리 결혼했어요’를 연출한 황교진CP와 최근 ‘최강야구’를 만들었던 성치경CP가 기획하고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요리계급전쟁’ 시리즈의 대본을 쓴 모은설 작가가 투입됐다. 이 정도라면 점사를 소재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갖은 논란에 휩싸였다. 먼저 지난해 소속 매니저들과 갖은 소송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개그우먼 박나래의 출연이 시작이었다. 이미 지난해 촬영이 끝난 프로그램은 박나래의 논란으로 그의 출연을 감췄다가 예고편과 함께 그 정체가 공개됐다. 박나래가 방송에 복귀하느냐 안 하느냐의 여부로 한동안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더 큰 논란은 2회가 공개되자 나왔다. 순직자와 관련한 모독 논란이 나온 것이다. 2회 ‘망자 사인 맞히기’ 미션에서는 실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정보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제작진은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故 김철홍 소방교의 사진과 생시, 사망 시점 등을 제시하고 사인을 추리하라고 했다.
소방현장에서 순직한 부분에 대한 유족들의 억하심정이 클 텐데 가족의 죽음이 운명술사들의 서바이벌 소재로 쓰인다는 말은 더욱 큰 충격으로 왔을 법하다. 유족들은 SNS를 통해 제작진을 성토하고 나섰다. 여기에 2004년 피의자 검거 과정에서 흉기에 찔려 순직한 故 이재현 경장의 사인을 맞히는 미션에서는 ‘칼빵’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칼에 맞은 행위’를 희화화해 표현한 ‘칼빵’은 MC 전현무의 입에도 오르내렸고, 결국 전국경찰직잡협의는 방송사의 공개 사과와 유가족, 전국 경찰공무원에 대한 공식 사죄, 문제 회차 방영분 즉각 삭제 등을 요구했다. 결국 제작진은 두 번에 거듭 사과에 나섰고, 전현무 역시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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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세 가지 논란에 비해서는 그 덩치가 크지 않았지만 ‘운명전쟁49’가 건드린 금기는 또 하나 있었다. 이는 운명술사끼리 서로의 점사를 하지 않는 나름의 불문율을 깬 것이다. 미션이 거듭되자 제작진은 2라운드 ‘기의 전쟁’이라는 미션을 통해 운명술사들이 서로의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보게끔 했다. 이는 서로 모시는 신이 다르고 이를 암묵적으로 존중해야 하는 술사들의 금기를 깼다. 실제 사주를 보는 이들도 이런 이유로 자신의 사주를 본다든가 하는 행위는 금한다.
심지어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서바이벌의 흐름에 따라 술사들이 팀을 이뤄서 하는 미션도 계발했다. 프로그램은 초반 하나의 점사를 하기 위해 방울과 부채 등이 스튜디오를 통째로 흔드는 오컬트적 스펙터클을 제공하지만, 결국 미션이 거듭될수록 그 소재는 선을 넘었고 외부로는 공개가 되지 않아야 할 의료정보나 개인의 신상이 드러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운명전쟁49’의 선 넘는 경쟁이 불편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부분을 따지고 보면 결국 점사가 필요한 이유와 맞닿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점성술사 등을 권력자들이 곁에 뒀던 이유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인류는 앞을 내다보지 못했기에 다양한 형태의 힘에 의존해 이를 알아내려 했고 이는 점성술이나 기복신앙 등과 묶여 무속인의 형태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이를 좀 더 과학의 영역에 꺼내 관상이나 사주전문가라고 표현하고, 한 편으로는 서양의 스타일을 따라 타로이스트라고도 표현한다.
‘운명전쟁49’는 이러한 술사들의 점사를 서바이벌의 영역에 끌어와 평가의 잣대에 올려놨다. 누가 결과를 잘 맞히고 맞히지 못하는가를 계측과 수치의 영역에 갖다놨다. 미지의 영역은 측정의 영역, 인지의 영역에 들어왔으며 술사의 능력은 얼마나 감춰야 했던 어려운 부분을 맞추느냐에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자신의 점사에 대해 그럴듯한 평가를 내놓는 술사가 유리해졌다.
이는 인간이 대대로 알 수 없어 미지의 영역에 두고 ‘믿음의 영역’으로 남겨뒀던 부분에 대한 일종의 ‘파묘’다. 제작진은 이들을 시험하는 더욱 높은 곳에 버티고 앉아 술사들을 평가한다. 제작진이 미지의 영역을 판단해보겠다는, 일종의 오만이다. 술사들을 단순히 점사를 맞추는 부분에서 평가한다면 이들이 주는 안정감이나 위안 등 형태가 없는 가치들은 폄하될 수밖에 없다.

과거 이러한 점사를 하는 술사들은 방송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단순히 점사의 결과를 전하던 전달자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방송에 나와 본격적으로 점사를 하기 시작했다. 각종 미스터리한 코드의 심령 프로그램의 발달로 이들의 모습은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조금 더 나아간 시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2024년 초반 개봉해 천만영화가 된 ‘파묘’의 술사들 모습이 힙하게 여겨지고, 지난해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들이 무당의 후예인 것으로 설정된 것 역시 ‘K-오컬트’의 가능성을 콘텐츠적으로 해석한 부분에 해당한다.
여기에 2024년부터 첫 시즌이 시작해 지난해 시즌 2가 나온 ‘신들린 연애’는 술사들의 영역을 넓힌다. 남의 이야기를 해주던 술사들이 연애를 위해 자신과 타인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종의 복합장르로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기존 코드와의 교합은 결국 서바이벌 형태 심지어 순직자의 명예를 건드리는 선까지 다가서고 만 것이다.
점사의 영역이 AI가 발전하는 지금도 영향력을 갖는 것은 사람들이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대한 신비감,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든 정리해주는 중간자적인 역할인 술사는 그런 의미로 완충의 역할도 했다. 이 영역을 선을 재고 수치를 겨루는 영역에 갖다 놓은 제작진의 오만은 어쩌면 곤란한 출연자를 편집하지 않고, 순직자를 모독하는 것만큼의 악재다. 그러한 제작진은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은가. 당연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