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의 상아 향한 마음은 사랑...양가적 형태"
"제주도 바이크 라이딩으로 목적 없는 평온 좇아"
"변우석에 왕위 못 물려줘...내게도 '재혼황후' 남아"

ENA 월화드라마 '클라이맥스'에서 주지훈은 흙수저 출신 야망가 방태섭을 입체적으로 빚어내며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자극하고 있다. 극 중 방태섭은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검찰을 벗어나 정치권에 뛰어들며 야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전개 속에서 주지훈은 특유의 비릿하면서 밀도 높은 연기로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는다. 어느덧 데뷔 20주년,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클라이맥스'를 맞이한 듯 여유로우면서 단단해 보였다.
"처음 대본을 받고 가장 흥미로웠던 건 '현실에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지점들이었어요.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불편한 인간상들을 모아놓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연기하기에 정말 재밌겠다 싶었죠. 원래 대본은 19세 미만 관람 불가였는데 15세로 낮춰지면서 설정의 변경 없이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묘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말없이 설명할 수 없는 노골적인 장면들을 다 덜어내야 했거든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의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그 빈틈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했어요."
이처럼 치밀한 고민의 해답은 철저한 사전 준비, 이른바 프리프로덕션 과정에 있었다. 주지훈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지원 감독과 대본의 빈 공간과 캐릭터의 디테일을 채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오히려 말을 아꼈다는 그는 카메라가 도는 순간 자신이 설계한 방태섭의 직설적인 욕망을 오롯이 분출했다.
"저는 프리프로덕션을 되게 많이 하고 치열하게 하는 타입이에요. 심할 때는 제가 안 나오는 신이더라도 이런저런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나눕니다. 그렇게 촬영 전에 이미 모든 걸 다 맞춰놓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 촬영장에서는 말이 없는 편이죠. 조직이 마냥 합리적일 수만은 없는데 태섭이 늘 박차고 나가고 싶었던 검찰을 벗어날 때 큰 해방감이 들었을 거예요. 극적 허용 안에서 태섭이 욕망을 향해 직진하는 선택의 과정들을 시청자들이 용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감정의 밸런스를 섬세하게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또 다른 축은 쇼윈도 부부이자 이해관계로 얽힌 아내 추상아(하지원)와의 호흡이다. 숨 막히는 카르텔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용하고 증오하는 듯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묘한 애착과 삐뚤어진 사랑이 뒤엉켜 있다. 연기 방식에서도 "일단 부딪혀 보자"는 주의인 주지훈과 상황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하지원의 대비되는 성향은 극 중 부부의 텐션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원 누나는 기본적으로 되게 순수하고 선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표독스러운 연기를 할 때 자신의 공간을 지켜가며 섬세하게 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감독님이 태섭의 상아에 대한 마음이 뭐냐고 물으셨을 때 저는 망설임 없이 사랑이라고 대답했어요. 상아가 혼자 술을 마실 때 '닭발이라도 시켜줄까'라며 비아냥대는 행동조차도 마음이 있기에 나오는 것이라고 봤어요. 태섭에게 상아는 트로피 같은 존재이면서, 아기 키우듯 다독이는 대신 고강도로 몰아붙이며 일어서게 하려는 양가적인 사랑의 형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클라이맥스'는 여배우들에게 유독 쉽지 않은 도전을 요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권력층을 연결하는 이양미 역의 차주영과 정보원 황정원 역의 나나는 파격적인 설정과 얽히고설킨 감정선을 탁월하게 소화하며 호평받고 있다. 주지훈은 젊은 여성 배우들이 대중의 선입견이나 질타를 받을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용기 있게 뛰어든 것에 대해 동료로서 깊은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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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 캐릭터는 원래 나이가 많은 설정이었는데 젊은 배우가 그 느낌을 따라가는 게 위험할 수 있음에도 기꺼이 감수해 준 (차)주영이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나나 역시 대중이 바라는 이미지와 다를 수 있는 파격적인 설정을 동료로서 훌륭하게 받아들여 줬고, 그 덕분에 우리 극에 엄청난 도움이 됐어요."

주지훈은 지난 20년간 쉴 틈 없이 달리며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했고, 연기를 통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무수히 넘나들었다. 흥행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맛보며 그는 "잘 만들었다고 무조건 흥행하는 것도,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라는 겸허한 진리를 깨달았다고도 했다. 욕망의 정점을 향해 폭주하는 극 중 방태섭과 달리, 인간 주지훈은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 없이 제주도를 달리며 일상의 평온을 찾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 도파민을 좇던 20대를 지나 단단한 안정감으로 무장한 40대의 주지훈이 앞으로 그려갈 또 다른 클라이맥스가 기대되는 이유다.
"데뷔 20주년을 맞이하니 '참 다행히도,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는 감사한 마음이 커요. 이 직업이 생각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결괏값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40대 중반이 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권력을 쥐기 위한 방태섭은 끝없이 욕망하는 인물이지만, 사실 저는 요즘 일상에서 최대한 평온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주도에 가서 목적 없이 바이크 라이딩을 하거나, 목이 마르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안정감을 좇고 있죠. 도파민은 덜 돌지 몰라도, 심심하면 심심한 대로 그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지금의 이 여유가 좋아요."

'중증외상센터', '조명가게'에 이어 '클라이맥스'까지 출연작마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주지훈. 그의 차기작에도 벌써 뜨거운 기대가 쏠리고 있다. 차기작은 디즈니 시리즈 '재혼황후'다. 원작의 엄청난 인기만큼이나 대중의 기대와 잣대가 몹시 높은 작품이기에 그 역시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따랐다. 캐릭터가 가진 특유의 감정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처음엔 캐스팅을 거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온 제작진의 끈질긴 설득과 믿음이 그의 마음을 결국 돌려세웠다.
"'재혼황후'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는 부담감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메가 IP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죠. 작품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물이 가진 감정선 자체가 이해 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고사하려고 했는데 평소 제가 정말 신뢰하는 제작진들이 저를 앞에 앉혀놓고 '이 작품엔 주지훈이 꼭 필요하다'며 설득하시더라고요. 제가 그토록 신뢰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까지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라면 저도 믿고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결국 출연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주지훈의 신드롬급 데뷔작이었던 '궁'과 묘한 평행이론을 이루는 새 드라마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 같은 MBC 편성인데다, 대한민국이 가상의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세계관까지 맞닿아 있는 '21세기 대군부인'이다. 왕자(대군)는 변우석이 맡는다. 자연스럽게 '궁'의 황태자 이신, 그리고 그를 연기했던 주지훈도 다시 소환되는 상황. 이제 왕위를 넘겨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주지훈은 "물려줄 수 없다. 제게는 아직 '재혼황후'가 남아 있는데 그걸 어떻게 물려주냐"며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지독한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방태섭을 거쳐, 다시 왕실의 중심으로 뛰어든 '재혼황후'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