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대비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공승연은 죄가 없다

도대체 대비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공승연은 죄가 없다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5.01 12:00

연기력 논란 이는 드라마에 무게중심 잡아주는 탄탄한 연기력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에서 대비 윤이랑은 왕비가 되기 위한 삶을 살았으나 남편의 죽음과 어린 아들의 왕위로 인해 불안과 억울함을 느꼈다. 대비는 이안대군에게 자신이 정한 여인과 혼례를 올리라 하는 등 헛된 것에 집착하며 21세기 왕실과는 동떨어진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대비 역을 맡은 공승연은 탄탄한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드라마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며 호평을 받았다.
사진제공=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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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부터 좀 하겠다. ‘21세기 대군부인’ 시청 후기에 으레 뒤따르는 말 중 하나가 ‘대체 대비가 왜 저렇게까지 하느냐’이다. 맞다. 솔직히 대비, 윤이랑(공승연)이 왜 그렇게까지 빌런 포지션을 고수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짐작은 간다. 대비는 억울할 것이다. 본디 왕실에서 가장 화려한 포커스를 받는 주인공이 누군가. 왕과 왕비 아닌가.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타이틀 그대로, 대군부인이 될 성희주(아이유)와 성희주의 남편이 될 이안대군(변우석)이다. 그러니 드라마 속 대비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 억울함만큼은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윤이랑은 대대로 왕비를 넷이나 배출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왕비가 되기 위한 삶을 살았다. 왕비가 되었고, 여인들의 우상이자 역사의 일부로 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영광은 허무하게 짧았다. 왕이 된 남편 이환(성준)은 왕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한 사내였고, 심지어 왕위를 동생에게 넘기려 했다. 그런 남편에게 이랑은 차라리 죽으라고 일갈한다. 얄궂게도 그 직후, 환은 화재사고로 죽으면서 이랑을 젊은 나이에 대비의 자리로 옮겨 놓는다. 환의 죽음이 단순 사고사인지 타살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죽음에 이랑이나 이랑의 집안의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랑은 남편에게 죽으라고 일갈한 자신을 기억하며 일말의 죄책감을 가졌을 것이다.

대비가 된 이후의 삶도 그렇다. 옛날 조선시대 같으면 왕위에 오른 어린 아들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며 전권을 휘두르기라도 했을 거다. 아니, 하다못해 입헌군주제인 21세기 왕실이라 해도, 힘 있는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왕실의 권위에 기대려 하니 알량한 권력은 있긴 하다. 헌데, 그 알량한 권력과 국민의 애정 또한 이안대군에게 쏠려 있으니, 억울함에 더해 불안할밖에. 이미 아들이 왕인데 과민한 걱정이라고? 아무리 사저에서 하는 말이라지만, 4화에서 어린 왕을 보며 “왕도 연령 제한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민정우 총리(노상현)의 말을 보라. 그런 말들은 대비 또한 숱하게 들었을 소리일 것이다. 아직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자신의 아들에게서 자꾸 유약했던 남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도 불안을 더한다.

사진제공=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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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대비는 자꾸 헛된 것에 집착하게 된다. 이안대군에게 자신이 정한 여인과 혼례를 올리라 하고, 해마다 내진연 게스트의 인원을 신분 위주로 타이트하게 조이며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자 한다. 조선시대라면 대비의 행동에 무리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21세기. 대비의 모습은 사회와 발 맞춰나가야 할 왕실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당장 유럽의 왕실들만 봐도 왕실의 권위와 혜택을 줄이고, 직계 왕족도 일반 유치원에 보내는 실정인데 말이다. 오죽하면 이안대군의 보좌관인 최현(유수빈)이 “대비마마는 꼰대”라며 뒷담화를 할 정도일까. 영국의 다이애나 비가 국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건 왕실의 권위를 세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려놓았기 때문인데, 21세기를 사는 윤이랑은 그걸 놓친다.

‘21세기 대군부인’에서 대비의 행동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말이 많지만, 대비를 맡은 공승연의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미 1화부터 공승연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혹시 ‘퍼컬’이 한복이세요?”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우아하게 당의를 소화한 모습이 왕비 그 자체였으니까. 이미 공승연은 ‘육룡이 나르샤’에서 원경왕후가 되는 민다경을 연기한 적이 있었고,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에서도 왕비가 될 뻔한 전적이 있다. 여러모로 많은 이들이 공승연이 왕비가 어울리는 배우라 생각한다는 증명이다. 안정적이고도 탄탄한 발성과 위엄이 깃든 강렬한 눈빛은 또 어떻고. ‘21세기 대군부인’은 21세기 현실을 다루지만, 사회의 분위기에선 여전히 신분제가 공고하다. 그 괴리감을 공승연은 특유의 발성과 눈빛을 위시로 한 침착한 연기 톤으로 메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이안대군과 일대일로 맞붙는 신들에서 그 안정감은 특히 빛난다.

비록 대비에게 러브라인의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공승연이 언제라도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자임은 6화 내진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진연 2부 파티에서 당의를 벗고 어깨를 드러낸 짙푸른 드레스 차림의 윤이랑은 눈부시게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당장이라도 이안대군과 성희주, 민정우 총리 사이에 껴서 멜로 텐션을 올릴 수 있을 만큼. 민 총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등장할 때의 미묘한 케미나 이안대군과 왈츠를 추며 위험한 대화를 나눌 때의 극적인 케미가 나만 느껴진 건 아닐 것이다.

사진제공=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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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안대군과의 신에서 대화를 음소거하고 보면 두 사람은 꽤나 잘 어울려 보인다. 드라마 인물소개란의 윤이랑 항목을 보면 이랑이 왕립학교에서 남편이 될 세자보다 시숙이 될 이안대군을 보며 가끔 무엄한 상상을 하곤 했다고 나온다. 이를 보면 애초에 살짝 러브라인의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듯도 하다. 비록 드라마 내에선 그런 서사가 아직 1도 풀리지 않았지만 공승연은 흔들리는 눈빛 속에 담긴 여운으로 그를 조금씩 풀어낸다.

남은 6화 분량에서 대비의 서사가 조금이라도 풀리긴 하겠지? 아직 불안하긴 하다. 정식으로 결정하고 의회의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선왕인 이환은 이안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려 했다. 그리고 그 유지를 이랑이 없앴고, 그런 유지가 있었다는 걸 이안대군이 알고 있음을 드러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이안대군과 성희주의 혼인을 받아들인 대비지만, 그 혼인을 그대로 내버려둘 리가 없다. 빌런 짓이 더욱 극심해질 것이란 얘기다.

지금 ‘21세기 대군부인’의 대비는 가장 우아하고도 침착한 연기를 선보이면서도 미흡한 세계관과 설정으로 욕을 먹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어서 빨리 대비의 서사를 풀어주든, 어린 왕의 지위가 위협받는 실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든 해달라. 조금의 디테일만 더해져도 공승연은 한층 명료한 연기로 보답할 테니까.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고독과 외로움에 침잠된 현실 연기부터 드라마 ‘악연’의 반전 모습 빌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유려하게 소화해내는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하게 해달라고, 제발.

정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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