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서 더 빛이 나는 대체불가 아우라

연상호 감독의 기대작 ‘군체’가 지난 21일 국내 개봉했다. 그보다 불과 며칠 전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정장에 드레스 차림으로 활짝 웃던 모습이 선명한데, 영화는 벌써 국내 극장에 올라 지난 주말까지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최고의 화제작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세에 못지않은 기세다.
‘군체’는 한 빌딩에서 정체불명의 생물학적 테러로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생존자들은 좀비처럼 변해가는 감염자들을 피해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간 봐온 수많은 좀비 영화의 내러티브(감염자 발생→생존을 위한 몸부림)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이 예상되는, 낯익은 좀비가 다시 나오는 영화인 셈이다. 더구나 우리는 연상호 감독의 좀비물을 앞서 두 차례나 경험했다. 2016년 1000만 관객을 넘어선 히트작 ‘부산행’과 2020년 381만 흥행의 ‘반도’다. 좀비 스타일에 어느 정도 변주를 줬다고 하지만 전체 대립 구도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군체’는 좀비물의 ‘재탕’이라는 점에서 우선 신선도가 다소 떨어진다. 연상호 감독의 아이디어와 생산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또 좀비냐" 혹은 "좀비로 뭘 더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새로움을 위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좀비를 창조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스스로 단체 학습해서 진화하는 좀비다. 이를 시스템에 연결된 인공지능(AI)이 다양한 반복 작업을 통해 학습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에 비유했다. 그래서 무리를 뜻하는 군체(群體)다.

몇 가지 색다른 맛이 있기는 하다. 처음엔 네발로 기어 다니던 좀비들이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며 뭔가 정보를 주고받더니 두 발로 걷고, 다시 학습을 통해 똑똑해지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섬뜩하다. 급기야 사람의 목소리까지 흉내 내는 지경에 이르면 소름이 쫙 끼친다. 그러나 사람을 쫓아가 물어뜯고 공격하는 본성은 똑같다. 잠깐의 자극이 신선하지만 이내 익숙한 좀비 스타일에 묻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 열흘만에 300만명을 넘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중에서도 사실상 ‘원톱’ 주연이나 다름없는 전지현의 아우라가 첫손에 꼽힌다.
전지현은 1981년생으로 올해 45세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40대 중반의 중년 여성이다. 그러나 너무나 동안이다. 도저히 40대로는 보이지 않는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키 173㎝, 몸무게 52㎏의 균형 잡힌 몸매에서 풍기는 인상은 여전히 탄탄하고 매력적이다. "일반인이 아니라 배우니까 가능한 거지"라고 핑곗거리를 찾을 수 있겠으나 1998년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와 1999년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으로 데뷔한 이후 지난 27∼28년간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한 데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비결은 철저한 자기 관리에 있었다. 전지현은 얼마 전 홍진경의 유튜브에 출연해 평상시 일과를 공개했다. 오전 6시에 기상해서 8시에 아침 운동을 하고 오후 2시에 첫 끼를 먹는 루틴. 불규칙한 스케줄 때문에 늦잠 자는 게 일상인 배우들에게 새벽 기상은 매우 드문 일이다. 게다가 매일 운동이라니…. 이거야말로 30년 가까이 전지현을 지탱해준 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기 쉬운 말처럼 "타고났다"거나 "저절로 된 것은 없다"는 뜻이다. 지속하기에 만만치 않은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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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은 ‘군체’에서 생명공학자 권세정 교수를 연기했다. 정체불명 군체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약점을 찾아내 무력화시키는 인물이다. 처음엔 고수, 지창욱, 김신록 등과 함께 시작해 집단 지성의 힘으로 군체의 위협을 헤쳐나간다. 그러나 압도적이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한두 명씩 사라지게 되고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군체를 조종하는 빌런인 구교환과 대결한다.
이때 전지현의 진가가 발휘된다. 나이를 잊은 외모에, 단단한 체격으로 부드러운 액션을 보여준다. 신분이 교수인만큼 여전사 같은 액션은 아니지만 낮은 톤의 대사, 단호한 표정, 날렵한 동작으로 믿음을 준다. 특히 뒤로 갈수록 역할 비중이 커지는 신현빈과의 호흡은 워맨스(Womance)를 연상시킨다. 전 남편인 고수를 두고 전 부인과 현 부인의 관계이기도 한 두 사람은 남편을 잃은 후 의기투합해 군체 제거에 힘을 모은다. 신현빈이 외부에서 CCTV를 보면서 길을 일러주면, 전지현이 좀비들 사이를 뚫고 전진하는 식이다. 건물 안에서 통제되던 군체가 급기야 통제선을 뚫고 외부에 터져 나오자 정부 당국자들은 줄행랑을 치지만 신현빈이 홀로 남아 전지현을 돕고, 전지현은 신현빈의 정보를 바탕으로 구교환을 잡는다.
전지현의 필모그래피 중 여전히 관객들의 뇌리에 가장 깊이 박혀 있는 작품은 ‘엽기적인 그녀’(2001)일 것이다. 스무 살의 전지현은 기존엔 볼 수 없었던 다소 괴이한 여성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2012)에서는 여우같은 액션걸 ‘애니콜’로, ‘암살’(2015)에선 독립군의 저격수 안윤옥으로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군체’는 그가 ‘암살’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작품이다. ‘군체’를 시작으로 중년이 더 아름다운 전지현의 제2의 전성기가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