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모션 행사의 한계....참조사항일 뿐 판단은 관객의 몫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가 그 제목처럼 극장가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관람객들의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다지만 흥행 전선에는 직접적 타격을 주지 않는 모양새다. 22일까지 250만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후 닷새 만에 200만 고지를 밟은 것은 올해 개봉작을 통틀어 ‘군체’와 함께 최고 성적이다.
충무로에서는 "든든한 후원군들이 지원사격을 해준 영향도 컸다"고 말한다. 누구일까? 봉준호, 이창동, 장재현 등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이다. 이 때문에 지나친 ‘내 식구 챙기기’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감독들은 나름의 ‘선’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봉 감독은 지난 15일 개봉일에 맞춰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호프’ 관객과의 대화(GV)를 열고 나 감독과 얘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봉 감독은 "‘내가 도대체 뭘 본 거지’라는 즐거운 영화적 충격과 흥분감을 가라앉히고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다"면서 "굉장히 놀라운 영화적 모험이다. 패기와 광기가 폭발하는 영화, 시네마의 진풍경을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동료 영화인으로서 감사드리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봉 감독은 "정말 놀라운 쾌감과 폭주의 롤러코스터"라며 "끊어질 듯 절대 끊어지지 않는 호흡에 박진감 넘치는 음악, 홍경표 촬영 감독님의 땅 위로 낮게 날아다니는 듯한 놀라운 카메라 워크(움직임)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은 ‘호프’를 이야기하며 서사보다는 역동적인 액션과 촬영 기법, 음악에 초점을 맞추고 칭찬했다. 이는 대중이 느끼는 지점과 비슷하다. ‘호프’에 대한 불호의 중심에는 "서사가 약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라는 문장이 있다. 봉 감독은 그런 부분보다는 ‘호프’의 강점에 초점을 맞추며 대화를 이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창동 감독은 어떨까? 이 감독은 "‘호프’는 영화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긴장감, 서스펜스, 타격감, 속도감 등 모든 요소를 한계치 이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며 "말 그대로 미친 영화"라고 호평했다.
그러면서 "‘호프’는 오락 영화의 극점에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높은 경지인 정점, 그 이상인 극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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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의 짚는 핵심은 ‘오락’이다. 그동안 나 감독은 오락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추격자’부터 ‘황해’, ‘곡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넣고, 복선을 깔아 관객들을 ‘분석놀이’로 끌고 갔다. 하지만 ‘호프’는 시작부터 ‘액션 장르’로 분류될 오락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감독 역시 이런 감독의 의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관련된 부분에 대한 칭찬에 중점을 둔 셈이다.
다음은 장재현 감독이다. 그는 "밤 신(scene)이 없다는 걸 두 번째 볼 때 알아차렸다. 돌비 시네마에서 볼 땐 화면과 사운드에 완전 압도됐는데, 일반관에서 보니까 오히려 놓쳤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사실상 이 영화를 여러 번 보라고 권했다. 아울러 CG 및 VFX 논란이 나오는 것에 대해, 세트가 아닌 자연광이 비치는 현실 아래에 외계인을 노출시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역시 서사보다는 이 영화의 화면과 음악, 촬영 방법 등에 초점을 맞추며 나 감독의 연출 의도가 정확히 반영된 작품이라는 의견이었다.

나홍진 감독 역시 이를 인정한다. 그는 "서사라는 살을 내주고, 디테일이라는 뼈를 얻으려 했다. 텍스트는 간단한 한줄이다. ‘한 경찰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쫓아다니다가 그놈과 추격전을 벌인다’ 이 문장 하나로 한 시간을 이어가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한 줄은 분명 ‘호프’의 주제의식을 충분히 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던 관객들이 바라던 지점과는 괴리가 있을 뿐이다.
물론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호프’의 장점과 나 감독의 의도에 초점을 맞춘 해석만 내놓는 것에 대해 눈총을 줄 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사가 약하고 설명이 불친절하다는 것까지 보호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한 번쯤은 이를 꼬집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올 만하다. 그러나 이 자리들은 영화 홍보 차원에서 마련된 프로모션 이벤트였다. 각 감독들은 "서사도 충분하다"는 식의 감싸기를 배제함으로써 정도를 지킨 셈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감독들 간의 친분을 넘어 영화 산업 전체에 대한 위기의식에 동참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호프’는 총제작비만 560억 원 가량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역대 한국 영화 최대 규모다. 이 영화마저 실패한다면 충무로로 흘러드는 투자금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팬데믹 이후 쪼그라든 시장이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깬 과감한 도전이라 할 수 있는 ‘호프’의 흥행을 위해 감독들이 일제히 한목소리를 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영화를 볼지 말지 여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유명감독의 말도 평론가의 말도, 이미 영화를 본 관객의 감상평도 그저 참조 사항일 따름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를 본다는 건 모험일 수 있다. 그러나 '호프'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는 모험이다. 이제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SF 영화' '나홍진 특유의 영화적 은유' 등 온갖 고정관념을 싹 다 버리고 뇌를 비운 채 엄청난 속도와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된다면 "내가 뭘 본 거지?"라는 탄성이 나올 만한 가슴 떨리는 156분을 보낼 수 있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