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움과 대담함 함께 품고 틈을 낸 익숙함

남지현이 깬 것은 단정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이미지에 붙어 있던 예상이다. 티빙 '내가 떨릴 수 있게'에서 그는 섹스토이 앞에서 허둥대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먼저 입을 맞추고, 과감한 베드신까지 소화한다. 그런데 낯선 장면에서도 남지현의 사랑스러움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익숙한 매력이 새로운 표현을 만나 오히려 선명해졌다.
아역 시절 '선덕여왕'의 어린 덕만으로 각인된 씩씩함은 성인 주연으로 성장한 뒤에도 그의 장점이었다. '쇼핑왕 루이', '수상한 파트너', '백일의 낭군님'에서는 생활력과 엉뚱함으로 로맨스를 이끌었다. '작은 아씨들'의 기자 오인경과 '굿파트너'의 신입 변호사 한유리는 옳다고 믿는 일에 물러서지 않는 얼굴을 더했다. 똑 부러진 말투와 버티는 힘이 남지현을 믿게 했다.
그렇다고 그가 줄곧 안전한 역할만 골랐던 것은 아니다. '하이쿠키'에서는 동생을 구하려다 욕망과 범법의 경계를 넘는 최수영을 연기했다. '내가 떨릴 수 있게'는 그 변화의 흐름에 놓인다. 이번에는 어둡고 거친 인물로 인상을 뒤집는 대신 특유의 밝음 안에 성적 호기심과 끌림을 들여놓는다.

'내가 떨릴 수 있게' 공연수(남지현)는 한 해 제사만 22번을 지내는 종갓집 장녀이자 실력 좋은 마케터다. 사랑과 결혼, 섹스에는 지켜야 할 순서가 있다고 믿지만 담당 광고주는 섹스토이 회사 대표 독고달(김재영)이다. 최신 유행을 읽는 직업과 몸에 밴 보수성이 충돌한다. 남지현은 그 간극을 웃음으로 바꾸면서도 연수를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다.
반듯한 태도 사이로 불쑥 파고드는 허당미가 특히 좋다. 독고달을 돕겠다며 계단을 오르다 허리를 삐끗해 도리어 그의 등에 업히는 소동이 그렇다. 마음은 앞서는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 엇박자가 귀엽다. 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내가 평균 다 깎아먹네 이거"라고 중얼거리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남지현은 진지함과 엉뚱함 사이를 오가며 반듯한 인물의 뜻밖의 속내를 슬쩍 내보인다.
김재영과 호흡도 이 매력을 살린다. 독고달이 태연하게 성을 말할수록 연수의 반응은 바빠진다. 남지현은 놀람을 웃음으로 풀다가도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호흡을 바꾼다. 같은 대화 안에서 가치관의 충돌과 이성적인 끌림이 겹치니 코미디와 로맨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연수가 그 끌림을 인정하는 계기는 전 남자친구의 소식이다. 헤어진 지 두 달 만에 새 연인과 아이를 갖게 됐다는 전 남자친구의 말에 허탈해하지만, 이는 자신의 감정도 일깨운다. 옆방에서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독고달이 괜찮은지 묻자, 연수는 전 남자친구와는 육체적 관계를 원하지 않았지만 독고달과의 입맞춤은 자꾸 떠오른다고 털어놓는다. 남지현은 이 고백 후 먼저 독고달에게 입을 맞추고 육체적 사랑을 나누기까지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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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드신 수위보다 그에 이르는 감정 폭에서 의미를 찾을 만하다. 신념을 지키는 인물에게 부여했던 단단함이 이제 자기 신념을 되짚는 과정에도 쓰인다. 똑 부러지면서도 허당일 수 있고, 보수적으로 자랐어도 먼저 욕망을 말할 수 있다. 사랑스러운 얼굴과 대담한 선택은 남지현의 유연한 연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내가 떨릴 수 있게'는 남지현의 장점을 지우지 않고 그 장점으로 새로운 영역에 들어선 작품이다. 익숙해서 편안했던 배우가 익숙한 얼굴로 예상을 벗어날 때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달라진다. 남지현은 반듯함이라는 껍질에 틈을 내면서도 자신만의 온도를 지켰다. 남지현의 다음 얼굴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