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의 여왕' 이선빈이 말하는 '코믹 연기론' [인터뷰]

'코미디의 여왕' 이선빈이 말하는 '코믹 연기론' [인터뷰]

최재욱 ize 기자
2026.11.0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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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출제의 비밀'서 또다시 하드캐리... "시원하게 웃으며 위로받고 가길"

배우 이선빈이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에서 지방 소도시 국어교사 맹보람 역을 맡아 생활 밀착형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이선빈은 캐릭터를 위해 메이크업을 포기하고 외적인 욕심을 내려놓으며 인물 자체에 몰입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촬영은 전북 무주의 한 리조트에서 두 달 반 동안 합숙하며 진행되었으며 유재명, 김영민 등 선배 배우들과 긴밀하게 호흡했다.
사진제공=(주)바이포엠스튜디오 
사진제공=(주)바이포엠스튜디오 

김선아, 김정은을 잇는 독보적인 생활 밀착형 코믹 연기. '코미디 하면 이선빈'이라는 신뢰 섞인 수식어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증명한 순간이다. 티빙 '술꾼도시여자들', 쿠팡플레이 '소년시대'를 거치며 차진 생활 연기와 남다른 순발력으로 대중을 쥐락펴락했던 배우 이선빈이 이번엔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감독 이용재)은 대한민국 2급 국가기밀인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를 위해 40일간 외부와 차단된 채 호텔 본부에 갇힌 출제위원들의 좌충우돌을 다룬 미션 코미디다. 이선빈은 얼떨결에 출제위원으로 합류한 지방 소도시 국어교사 '맹보람' 역을 맡아 무해한 순수함과 꺾이지 않는 줏대로 극의 중심을 든든하게 받친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선빈은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솔직한 화법으로 인터뷰실 공기를 단숨에 녹였다. "언론시사회 피드백을 보고 아직 마음이 안 가라앉았다. 요즘은 영화 개봉 자체가 너무 힘든 시기라 극장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날것 그대로의 반응을 주는 라운드 인터뷰가 무척 궁금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사진제공=(주)바이포엠스튜디오 
사진제공=(주)바이포엠스튜디오 

# 판타지인 줄 알았던 신박한 소재

지난 10월 초 열린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영화를 처음 선보였을 당시의 떨림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선빈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솔직히 너무 떨렸다. 레드카펫이 이제껏 걸어본 것 중 제일 길더라. 원래 '파워 연예인'을 못 하는 성격이라 스타일리스트 언니한테 포토월 자세 코칭까지 받았다. 관객과의 대화(GV)를 세 번 했는데, 소중한 시간을 내 영화를 선택해 주신 관객들을 직접 만나니 감사의 연속이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당시를 회상했다.

'수능, 출제의 비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의 첫인상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온 국민이 모를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시험이 수능이잖아요. 그런데 정작 '문제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40일간 쓰레기조차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다는 게 처음엔 픽션이나 판타지인 줄 알았죠. 알고 보니 실제 매년 일어나는 일이더라고요. 치열한 갈등과 보안 수칙들도 철저히 고증된 거였어요. 한 번도 다뤄지지 않은 이면을 다룬다는 소재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 예쁨을 완전히 지운 자리… "망가져도 좋아"

이선빈이 연기한 맹보람은 행정착오로 수능출제위원 명단에 오른 인물. 쟁쟁한 엘리트 교수들 사이에서 홀로 '지방대 출신 교사' 타이틀을 단 막내다. 세상 물정엔 어둡고 눈치는 없지만, 학생들을 위한 공정과 정의 앞에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뚝심을 지녔다.

사진제공=(주)바이포엠스튜디오 
사진제공=(주)바이포엠스튜디오 

"맹보람은 여기 오면 안 될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들어온 것 같은 인물이어야 했어요. 처음엔 출제위원이라는 직업적 전문성을 연구해야 하나 싶었는데, 대본을 볼수록 전문성이 아닌 '학생에 대한 진심' 하나로 직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순수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밉지 않은, 파릇파릇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이었죠. 제 필모그래피에서 이런 결의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이선빈은 외적인 욕심을 철저히 내려놓았다. 직전 작품 촬영으로 제주도에서 두 달간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분장팀은 환영했고, 별도의 메이크업 없이 볼륨을 완전히 뺀 머리를 질끈 묶었다.

"이선빈을 아예 지우고 맹보람만 남기고 싶었어요. 밥도 우걱우걱 먹고, 붓거나 빨개지면 부은 대로 카메라 앞에 섰죠. 가족과 친구 시사회 때 스크린 속 제 모습을 보는데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망가지고 있더라고요. 친구들이 '저건 이선빈이 아니라 그냥 맹보람이다'라며 빵 터지는 걸 보고 '그럼 됐다' 싶었죠. 사실 데뷔 이래 풀메이크업으로 나온 작품이 거의 없긴 하지만, 때칠 한 번 안 하고도 이렇게까지 촌스럽고 자연스럽게 나온 건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 두 달 반 합숙 촬영이 만든 꿀케미

촬영지는 전북 무주의 한 리조트. 약 두 달 반 동안 외부와 동떨어진 채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촬영은 배우들을 실제 출제위원들처럼 끈끈하게 묶어주었다. 유재명, 김영민, 전석호 등 베테랑 선배들과의 앙상블은 이선빈에게 배움의 연속이었다.

"문 열고 나오면 바로 현장이었으니 이동 시간도 없고 촬영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어요. 연출부 오라버니가 '액션'과 '컷'을 외치다 목이 쉴 정도로 저희끼리 웃느라 NG가 쏟아졌죠. 사실 저는 코미디를 혼자 이끄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다른 선배님들이 상황과 호흡을 만들어주시면 저는 리액션을 던지며 업혀 간 것에 가깝죠."

특히 김영민에 대해 "젠틀하고 부드러우시면서도 동안 미소로 현장 공기를 확 바꿔주신다. 회식 자리에서 크라잉넛 노래를 부르실 땐 반전 매력의 끝판왕이었다"며 웃었다. 함께 부딪히는 신이 많았던 유재명에 대해서는 "화 한 번 안 내시고 묵직한 카리스마로 현장을 이끌어주셨다. 한 번은 감정선이 아쉬워 고민하던 신이 있었는데, 선배님이 먼저 '다시 한번 찍어보자'고 손을 내밀어주셨다.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그 배려를 보며 진정한 '좋은 어른'의 모습을 배웠다"고 깊은 존경을 표했다.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 코미디는 가장 치열한 훈련

흔히 코미디는 '배우의 밑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르'로 꼽힌다. 탄탄한 기본기와 순발력, 정확한 타이밍 감각이 없으면 관객의 웃음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웃음과 눈물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배우로 각인된 이선빈이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을 '더 채워져야 할 배우'로 규정했다.

"나름대로 필모그래피를 짤 때 '공기살인', '노이즈', '창궐' 같은 진중하고 어두운 작품과 코미디를 번갈아 섞어가며 계획했어요. 하지만 대중에게 각인되는 건 결국 인간 냄새 풀풀 나는 생활 연기더라고요. 코미디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걸 매번 뼈저리게 느껴요. 웃음을 드리는 과정 자체가 제겐 아주 치열한 연기 훈련이 되고 있는 셈이죠."

이어 "지금도 중저음 보이스라 진지한 대사를 읊을 수는 있지만, 가끔 제 안에서 '성숙한 척하는 아기'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단어 하나, 눈빛 하나에 깊은 무게감이 실리는 연기는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삶의 연륜과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야 우러나오는 것 같다"며 "30대 중반, 40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묵직한 아우라가 스며들 제 10년 뒤가 기다려진다"고 눈을 빛냈다.

# 소통은 다정하게… 모두 사랑합시다!

연인 이광수에 대한 솔직하고 유쾌한 언급도 인터뷰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최근 팬 소통 플랫폼 '버블'에서 다정하고 긴 답변으로 이른바 '소통왕'에 등극한 이광수 이야기가 나오자 이선빈은 손사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구, 저는 오빠 버블 구독 안 했어요. 생각도 못 했네요. (웃음) 제가 굳이 돈 내고 구독까지 해야 하나요? 이미 현실에서 충분히 듣고 있는데요. 그래도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는 점에서 너무 응원해요. 저도 오늘 인터뷰 오기 직전까지 제 버블로 팬들과 이야기하다 왔거든요."

'이광수보다 연락 빈도가 적은 남자친구와는 만나지 말라'는 온라인상의 유행어에 대해서는 "어느 한 사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으면 다른 성향을 가진 분들이 너무 서운하지 않겠냐"며 "우리 모두 다 각자의 방식으로 예쁘게 사랑합시다!"라고 호쾌하게 덧붙여 폭소를 자아냈다. "사실 둘 다 평소 대화할 때 문장을 구구절절 길게 쓰는 편이라 그 다정한 말투가 낯설지 않았다"며 끈끈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선빈은 '수능, 출제의 비밀'이 각박한 현실을 버텨내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숨구멍이 되길 소망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생활의 무게와 책임감이 무거워져서 마음 놓고 활짝 웃는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우리 영화는 수능이라는 거대한 시험 뒤편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면서도, 그 안에 진짜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따스한 질문을 던져요. 극장에 오셔서 복잡한 생각 내려놓으시고, 시원하게 웃으며 위로받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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